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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시스 Ohasis Oct 30. 2022

평화로운 스위스에서 쓰는 편지


안녕? 오늘 이곳엔 비가 왔어.

네가 있는 그곳은 어떠니.


스위스에 있을 때만큼은 비가 오지 않길 바랐는데, 첫날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오고야 말았어. 기대한 날씨가 아닌 것도 속상한데, 시무룩한 기분으로 여행을 망칠 순 없겠다 싶어 ‘그래, 내가 언제 비가 오고 흐린 스위스를 겪어보겠어?’라는 초긍정적인 마인드로 최면을 걸었어. 그런데 신기하게 얼마 있지 않아 날이 맑아지더라. 분명 흐린 날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맑은 날을 보고 나니 흐린 날이 괜찮다던 온데간데없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거 있지. 여행하면서 날씨가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나 봐. 근데 예쁜 풍경을 보며 행복해하다가도 이내 슬퍼지기도 했어. 예쁜 풍경을 보는데 어떻게 슬플 수가 있냐고? 이 황홀한 순간을 나만 보는 게 속상하더라. 자꾸만 아끼는 사람들의 얼굴선이 떠오르더라고. 이 풍경을 같이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스위스로 데려오고 싶었어. 좋은 곳에 있다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순 없는 건가 봐. 나는 관계의 연결망 속에서 오는 감정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의 비율을 따지자면 100% 중에서 20% 정도는 다른 곳으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거지. 그래서 어떨 땐 재미있기도, 어떨 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어. 그렇지만 내가 이런 걸 어떡하겠어. 오늘은 나를 이해한다고 내뱉는 말의 힘을 빌려 이런 나를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볼게.


나는 불안할 때도 가슴이 아팠고, 슬플 때도 가슴이 둔탁했고, 기쁠 때도 가슴이 아렸는데 끝없이 펼쳐진 푸르름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편안해지더라. 오히려 감정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직시하고 받아들이니까 편해진 것 같아. 비로소 안정된 숨을 찾은 것만 같네. 이 호흡을 잘 기억해서 독일이든, 서울이든 내가 어느 곳에 있든 숨을 잘 쉬어보려고. 저번 주에 호흡이 가빠지고 불안정한 순간이 자주 있었는데 여기서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나, 정말 편안해도 되는 걸까? 행복해도 되는 걸까? 허락 없는 물음이 정처 없이 맴돌아. 겨우내 찾은 숨의 길에서 다시 제동을 걸어. 스스로도 결론을 내릴 수 없고, 어느 그 누가 대답해 준다고 한들 쉽게 만족되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어. 그래, 답이 없는 거지. 이런 물음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도 해. 그런데 미뤄두면 큰일 날 것 같은 거 있지. 그래서 일단 찬찬히 살펴보고 있어.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꺼내 둬. 썩거나 곪지 않게 말이야. 너도 이런 기분 겪어본 적 있니? 굳이 너까지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감정을 겪었을 거라 잠시 생각해 봐.


서울에 많은 비가 내려서 지하철 역이 잠기고 사고가 많이 났다는 기사를 본 게 발단이었어. 마음이 무겁더라.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눈앞에서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위스를 완전히 즐기기까지 꽤나 긴 에너지를 들였어. 역시 어디에 있든 내가 나고 자란 곳의 소식을 멀리할 순 없나 봐. 내 서사는 거기서 모두 시작되었으니까 말이야. 독일은 낮일 때 한국은 밤인 시간을 넘나들면서 두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어. 처음엔 혼란스럽다가 나중엔 어디에 주춧돌을 두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성이 흥미로워서 제법 즐기고 있었는데, 아픔까지 두 배로 겪게 될 줄은 몰랐네. 한국은 폭우로 힘들어할 때, 유럽은 가뭄으로 힘들어하고 있었거든. 좋아하는 세상이 많아지면 아프고 슬퍼해야 하는 것들도 함께 많아지는 건가 봐. 이것도 질량 보존의 법칙인 걸까? 난 언제쯤 이 무게를 앓는 소리 없이 감당할 수 있을까.


가족들과 친구들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어.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나 봐.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데 누구는 더 힘들고 아프고 한순간에 목숨을 잃어. 그게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이 비참하게 느껴져.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성큼성큼 느끼고 있어. 이렇게 내가 믿었던 세상이 깨지고 안위가 흔들리는 날엔 내가 건져놓은 문장들을 찾아가. 오만하고 창피하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공존하거든.


올해에 내가 품고 살아가는 문장이 있어, 너에게도 알려줄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 있는 문장이야.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예민한 몸을 이끌고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에 부딪히곤 해.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많거든. 그럼에도 그 잠깐의 낭만이 주는 중독성 때문에 계속 여행을 갈망하는 것 같아. 여행을 다니면서도 여행이 고파. 생소한 것들을 온몸으로 겪느라 에너지가 바닥난 날이면 집이 그리울 때도 있어. 근데 하루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 사람들이 꼭 가야 한다고 추천한 곳도 가보고 내가 가보고 싶은 곳들도 가봤어.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서 무조건 나도 좋은 건 아니더라. 다른 사람들이 별로였다고 해서 나도 별로라는 법도 없었고. 오히려 나는 별로라고 말한 게 좋았던 적도 있었어. 어딜 가든 마이너한 취향에 속하는 편은 아닌데, 한 번씩 주류에서 꼭 튕겨나갈 때가 있는 것 같아. 주류에서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그게 달콤하다는 것도 아는데, 나는 그 달콤함이 씁쓸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 생각해 보면 어릴 땐 주류에서 벗어나는 걸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벗어나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점차 배워가고 있어. 나는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배운 걸 실생활에서도 적용하면서 나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2학년 때 한번 휴학하고, 또 언제는 SNS를 한 달 동안 아예 안 하면서 세상과 동떨어져 보기도 하고, 평소엔 억지로 화장하지 않으면서 내게 맞는 것을 찾아갔어. 그 경험을 토대로 여행에서 기차를 놓쳐도,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돼도, 돈이 부족해도 침착하게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거였나 봐. 과거의 내가 남겨둔 용기로 현재를 살아가고, 예고 없이 들이치는 것을 걸러내는 방파제로 미래를 파도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그렇게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나 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이해하지 못해. 단 1분 뒤에 올 상황도 예측하지 못하지. 그런데도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어. 우리는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맞는 일보다 틀리는 일이 허다해. 전에도 틀릴 거고 앞으로도 틀릴 거야.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회의일 때 진정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거친 단어로 너의 삶을 단순히 요약하거나 거칠게 일반화하려 들지 않을게. 구체적이고 복잡하게, 부담스럽지 않게, 무해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할게. 그 시작은 내 이야기를 조심스레 건네는 것에서부터야.


오늘 네 세상은 어떠니. 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어떤 눈이니. 세상을 살아가기 벅찰 때 어디에 기대곤 하니. 오늘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창한 질문들을 들이밀어. 다 대답해 줄 필요는 없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나중에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 때, 네가 생각한 이유들을 하나둘씩 말할 날을 천천히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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