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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시스 Ohasis Oct 30. 2022

행복해서 불안할 땐 어떻게 하나요

독일에 처음 왔을 때, 행복해서 무서웠다. 행복해서 무섭다니. 좀처럼 함께 쓰이지 않는 단어가 연결되어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양가적인 마음을 저울질하는 것에 익숙한 나로선 새로움에도 퍽 친근감을 느꼈다. 

음, 이런 마음도 겪을 수 있구나. 마음을 입체적으로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행복과 불안이 양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행복과 불안을 아예 다른 것이라고 정의했다는 걸 깨달았다. 상반되는 태도가 동시에 존재하는 걸 양가적이라고 하는데, 행복과 불안은 상반된 것일까? 나는 매일 행복하고 매일 불안한데, 그 정도가 다른 것이 새로운 걸까? 그렇다면 이전의 행복과 불안은 뭐였지? 감정을 수치화할 수 있다면, 최대치라고 느꼈던 그 감정의 근원은 무엇이었지? 이런 물음들을 이어가곤 했다. 정답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으로 행복과 불안의 이유를 찾곤 했다. 


상상력이 없는 편인데, 내 마음에 대해서는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다. 내 마음을 잘 그릴 수 있어야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모양도 그리며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무엇보다, 마음을 살펴보는 일이 나에겐 잘 맞았다.


그토록 바라던 행복인데, 늘 행복해지기를 바랐는데. 가족들도, 친구들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데. 행복한 삶을 꿈꿨던 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었는데 왜 행복해서 불안하지?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아무래도 처음 겪는 행복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듯하다.


감정에도 프라임이 있다면, 나의 프라임 감정은 불안이라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삶에서 필요한 거라고 하지만,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던 스무 살을 지나 스물세 살이 되었다. 수많은 감정 속에서 어느덧 불안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독일에 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시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구나. 새로운 환경과 사람은 내 마음까지도 낯설게 했다. 이만큼 행복하다면, 비례하는 불안정함도 견뎌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행복함으로 불안정함을 견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행복하고 불안한지 적어보자. 행복한 날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기록하자.'


이 두 가지 다짐으로 3월을 당차게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좌절하고,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온몸으로 겪으며 작아지고 커지는 순간을 반복했다. 숱한 생각과 다짐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행복하고 불안했고, 불안하고 행복했다. 대신 감정들을 묵혀두거나 썩히지 않았다. 끈질기게 지킨 최소한의 약속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에 나와 잘 지내야 했다. 먼 타지에는 보호자가 없기에,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나를 잘 달래야 한다. 도움을 요청하고 기댈 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곳에서는 홀로서기를 연습하고 싶었다. 걸음마 이후로 다시 혼자 일어서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나는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할 때 행복했다. 좋아하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세계는 한층 더 밀도 있어진다. 좋아하는 게 사소한 것일수록 자주 행복해진다. 좋아하는 것들에게서 받은 용기로 넓어진 마음의 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줄 날을 기다린다.


이전까지 행복은 일종의 보상이었다. 내가 무언가 힘들고 어려운 걸 이겨내야만 겪을 수 있는 감정에 가까웠다.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보상이 필요했고, 마침내 나와의 싸움에서 마쳤을 때의 해방감을 행복이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꼭 고난한 길을 지나치지 않아도 행복은 겪을 수 있었다. 겪어도 된다는 ‘허용’의 뜻이 가깝다. 허용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했다는 게 중요하다. 내 마음에 대한 답을 다른 곳에서 구하지 않고 내게서 찾을 수 있었다. 누가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평가해 주지 않아도 내가 맞게 가고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됐다. 맞는지 아닌지 모르면 일단 맞다고 생각하자. 해도 안되면 다시 해보면 되고, 해봐도 안되면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고, 그래도 안되면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 보면 된다. 그렇게 불안을 받아들이고 잠재울 수 있었다. 너무 답답해서 미치겠을 땐 책을 읽었다. 활자 속에서 내 마음을 꺼내고 들여다보는 일을 계속했다. 


아예 단단하거나 불안한 것은 없다. 위층은 연속적으로 흔들리더라도, 마음에 발을 닿고 있는 지지대층이 단단하다면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무너지면 넘어져도 덜 아플 쿠션 하나 정도는 깔아 둘 시간이 생긴다. 어느 날은 불안한 층에 갔다가 또 어떤 날은 단단해지는 층으로 오르락내리락할 테지. 내 마음대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숨이 가쁘고 땀이 난다. 몇 층이나 올라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 모른다. 확실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몇 없다는 걸 뼛속 깊이 느낀 요즘, 내 마음만은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는 내가 약해질 날이 두렵다. 그래서 이렇게 기댈 구석을 많이 만들어 두는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자신에게만은 덜 가혹해도 되지 않을까. 서로에게 너그러워지면 사랑함을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기댈 구석이, 내가 지난해서 남긴 흔적들이 누군가의 기댈 구석이 되는 날을 꿈 꾸고 있다. 당신이 나를 보고, 내가 당신을 보는 눈빛을 바꾼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풀어 오를까, 그 반짝임을 옮기기엔 어떤 섬세한 언어도 부족하다는 걸 한탄하면서도 쉬이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오늘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맘껏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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