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은 나의 종말인가
세상은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도통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물음에 휩싸이는 요즘, 어리석게도 이 혼란의 끝은 지구의 종말이거나 나의 종말 둘 중 하나라고 답을 내렸다. 구체화 할수록 물음은 또 다른 물음을 낳는 것으로 자가생식하듯이 온통 물음만 가득했기에 유일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이 물음이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중단되어야 끝난다는 것이었다. 중단은 곧 결론이나 끝맺음과 동일하지 않아 어떤 평행세계에서는 물음이 답을 기다리며 고요히 순환하고 있을 것만 같다. 세상엔 정확한 것보다 모호한 것이 많고 수학 문제의 답을 찾듯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게 대부분인 것을 인정하는 게 어려워 스스로를 좌절 속에 빠뜨린다.
과학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만든 진보의 결과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녕 이게 인간의 삶에서 고통을 줄여 안락에 이르게 하는 것인지. 모든 사람이 같은 목표와 윤리의식을 가지고 진리와 공동선을 행하진 않는다. 똑똑한 그들이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만든 어려운 물질들은 오로지 자신의 자유와 부 그리고 명령의 복종으로 만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그들의 책임과 양심을 축소하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다.
지구의 종말은 나의 종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의 종말은 지구의 종말인가? 그렇지 않다. 면적, 무게, 부피 그 어떤 개념과 정의로도 지구와 나는 같은 위치에 있지 않지만 내 세상은 결국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로지 나만이 지구와 나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지구로 두었다가 상상력을 발휘해 우주로 넓혀 우주의 무한함이 곧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의 끝이라고 오만하게 움켜쥐었다가 곧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로 범위를 직시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데아가 같을 순 없어서 나와 같은 이데아를 꿈꾸는 사람들과 사회를 찾아다니며 소속되려 한다. SPC 노동자 사망 사고, 신당역 살인 사건과 끝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친듯이 오르는 물가를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파고든 끝에 돌아오는 것은 인간의 탐욕과 혐오와 악이다. 나도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도망친 곳도 결국엔 세상이거늘. 도대체 나는 어디서 실존할 수 있는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 괴로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무지의 무지를 경계하던 나는 이제서야 무지를 깨닫고 평생토록 앎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몸부림친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