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남쪽 끝에 위치하는 여수에서 지내온 지 1년이 넘었다. 우연히 지도어플을 켜고 여행할 곳을 찾다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가기 편하다는 이유로 여수를 선택했고, 그 계기가 이렇게 오래 지내게 된 이유가 돼버렸다. 여행 중 발견하게 된 카페에 처음 방문을 하고 몇 달이 지난 후, 카페 사장님은 나의 동거인이 되었다. 바리스타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연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니 더더욱 여수는 내게 의미 있는 운명적인 장소일 거다.
여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강의가 없는 날에는 동거인의 카페에서 자잘하게 일을 하기도 했지만 혼자서 여기저기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애정하는 장소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여수의 생활인이자 타지인의 기록이다. 굵직굵직하게 유명한 여행지를 가야 하는 방문객을 위한 것이 아닌 산책하듯 일상에서 바람 따라가보면 좋을 여수의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글이다.
1. 충민사와 현암도서관
충민사는 여수 덕충동에 있는 사당이다. 여수역에서는 차로 10분 이내에 도착한다. 이순신 최초의 사당으로 이순신에게 큰 힘이 돼주었던 무사 이억기, 안흥국이 함께 모셔지고 있는 곳이다. 장군과 무사가 아직까지 남해의 바다를 지키는 듯, 사당은 충민사의 가장 안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위치한다.
사당으로 가는 길은 산책하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우측에는 작은 유물관도 함께 마련되어 있어 여러 전시품도 관람할 수 있다. 사당의 초상화가 바라보는 바다를 한번 보고, 초상화를 한번 번갈아 보았다. 일상에 잊고 있던 감사함이 저절로 생겨나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곤 한다.
충민사에서 조금만 더 걸어 산책을 하길 권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좀 힘들 거리만큼인데, 가다 보면 현암도서관이 나온다.
1층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내부 인테리어가 한옥으로 꾸며져 있어 박물관에 온 느낌을 준다.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앉아 책을 읽으며 쉬다 보면 도서관에 왔다는 생각을 잊게 되고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나와 2층으로 자리를 옮기면 휴게실과 일반자료실이 있다. 창밖에는 남쪽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국내 모든 도서관을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국내 도서관 중에서는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손꼽히지 않을까 싶다. 푸른 남해 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머리를 식히면 이보다 더 좋은 휴식이 있을까.
여수의 경치 좋은 카페는 워낙 비싼 커피값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데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독서를 하다가 바다를 보고 바다를 보다가 텀블러에 담아 간 커피를 마시고 글도 쓴다면, 책과 도서관을 애정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나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충민사 전경 <출처 : 국가유산청>
충민사 숭모문 <출처 : 국가유산청>
현암도서관 어린이자료실 <출처 : 위키백과>
현암도서관 전경 <출처 : 디지털여수문화대전 홈페이지>
2. 자산공원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면 아무래도 고지대로 가야 한다. 여수에 있는 여러 공원 중에서 종화동 고지대에 위치한 자산공원에 갈 때에는 일부러 걸어가곤 한다. 사계절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등산을 하는 기분으로 오르다 보면 어느새 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고 나무의 향이 깊어 깊은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에 빠지기도 한다. 자산공원으로 가는 길은 차로 이동도 가능하고 주차장도 있다. 여건이 어려운 사람들은 차로 올라와도 상관없다.
자산공원 둘레길은 꼭 산책코스로 넣어야 한다. 이 둘레길이 진또배기인 이유는 아무래도 경치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바다 건너편 경상남도 남해가 멀리 보이는데 '아마 저기가 내가 갔던 그곳이겠지?'라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구나 싶다.
바다를 한눈으로 볼 수 있다는 고지대 다운 장소에 걸맞게 2024년 마지막 일몰과 2025년 첫 일출을 이곳에서 바라봤다. 둘레길의 풍경이 아름답다 보니 멀리 가지 않아도 장관을 바라볼 수 있다. 여수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는 장소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날이 따듯해지는 계절에는 맨날로 걷는 황톳길도 있으니 신발을 벗고 바다를 바라보며 걸으시길 추천한다. 발을 씻을 수 있는 장소도 있으니 손수건 하나만 있으면 된다.
나는 이미 이 모든 걸 다 해봤다.
자산공원으로 가는 길
경상남도 남해가 보이는 자산공원 둘레길
2024년 마지막 일몰
2025년 첫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