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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렌 Mar 12. 2024

그저그런 작업멘트 같을지라도

패스트 라이브즈 리뷰

인연: 연기사상 또는 결과를 내는 원인[因]과 조건[緣]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희, 인연인가봐요."

참으로 식상한 작업멘트가 아닐 수가 없다. 차라리 '라면먹고 갈래요?' 가 선녀로 보일 정도.

'자칭' 천주교 신자이자 역설적이게도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윤회사상을 그다지 확신하지는 않는다. 물론 없다고 단언은 못하지만.


인연이란 말에 대해 그다지 깊게 고민해 본적도 없는 것 같다. 첫 연애의 대상이던 친구는 1학년때 미국으로 갔다가 5학년때 다시 오며 만나 6학년때 사귀게 되었고, 첫사랑이라 생각하는 그 친구는 멀어졌다가 정말로 어쩌다보니 다시 친해져 다시 한번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이 관계가 인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는 작품 속 '해성'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해성이 인연을 얘기하는 이유는, 전생과 다음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생에는 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성장극이다. '라라랜드'와 '초속 5cm'에 가까운 영화이다. 로맨스로 보면 끊임없이 멀어지는 영화이지만, 성장극으로서 바라본다면 두 주인공이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이다.


1. 왼쪽과 오른쪽, 2번의 멀어짐


영화를 보다보면 묘하게 익숙한 장면들과 이동동선이 드러나는데, 바로 왼쪽의 '해성' 오른쪽의 '노라'이다. 포스터에서도 둘이 다시 재회하여 포옹하는 장면을 그린 포스터를 제외한 모든 포스터에서 해성왼쪽, 노라오른쪽에 있다. 그저 각 배우의 오른쪽 얼굴과 왼쪽 얼굴이 잘생기고 이뻐서 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왼쪽은 과거, 오른쪽은 미래이다.


노라의 이민으로 둘이 처음으로 멀어질때의 장면을 떠올려보면 노라는 오른쪽 계단, 해성은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 멀어진다. "잘가라" 라는 말만을 남긴채.


12년의 기다림 끝에 둘의 두번째 만남은 또다시 "잘가라"라는 말로 끝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다 서글픈, 할말이 더욱 많은 말이 되어 둘의 멀어짐을 말한다. 이후 노라는 예술인 모임에서 남편될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다시 미국에서 동부(오른쪽)의 상징 뉴욕에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스트사이드에 정착한다.


2. 재회


노라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남편과의 사이도 무척 좋아보인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갑작스럽게 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뉴욕으로 온 해성이다. 24년만의 재회. 언제나 왼쪽에서 오른쪽의 그녀를 쫓던 해성이 오른쪽에서 노라의 삶에 침투한다. 그렇게 둘은 깊고도 어색한 포옹을 한다.


이후 뉴욕에서 둘의 모습은 어색하다. 그러나 익숙하다. 의도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한국인 입장에서 어색한 둘의 한국말 대화 역시 이 어색함을 증가시키기에 그다지 나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노라의 어릴적 대화법들은("당근이지!") 뉴욕에서는 딱히 지켜지지 않는 둘의 방향성의 이유를 보여준다. 해성과의 재회로 노라는 이때  나영이 된다.


하남자인줄만 알았지만 실은 대인배였던 노라의 남편과 해성과의 더욱더 어색한 만남이 이어진다. 이 영화의 첫장면이자, 하이라이트가 그렇게 뉴욕의 한 바에서 진행된다. 노라는 가운데에 앉아있고 남편오른쪽, 해성왼쪽에 앉아있다. 노라는 그렇게 과거와 미래(현재) 사이에서 둘을 연결하기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과거와의 대면이 시작된다.


3. 인연


 12년 주기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시계 한바퀴, 1년의 개월 수, 동양의 십이지. 12는 인간사회에서 한바퀴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즉 뉴욕에서의 재회는 이 인연의 3번째 생의 만남인 것으로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12년전에 해성이 뉴욕에 왔더라면, 24년전에 나영이 노라가 되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면, 해성은 이전 생들을 떠올리며 가정을 해보고는 한다. 하지만 동시에 노라와 남편의 인연을 인정하고 응원한다. 

 

 전생의 어떤 연? 이들의 만남은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 나영을 그리워하는 해성의 외침에 노라가 뒤돌아보고 흔들렸다. 누군가는 불렀고, 누군가는 응답했다. 우연도, 전생의 인연도 아닌 지금생의 노력이고, 사랑이다. 전생에 어떤 관계였는지 가정하고 장난치지만 이들은 이어질 수 없다. 인연도 뭣도 아니였나보다.


 하지만 어쩌면 해성과도 비슷한 이 영화의 감독은 낭만적이게도 이들의 만남을 12년주기로 설정하며, 인연이라는 말에 힘을 불어넣는다. 한번의 생을 사는 동안 노력으로 이루어진 만남들이지만, 영화적으로 이들은 3번의 생을 윤회하며 매 생마다 결국에는 만났다. 


 영화가 이렇게 말하는듯 하다. 인연은 전생의 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12년의 시간마다 시차와 거리를 극복해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인연이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결혼하지 않았어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은 인연이니까. 그저그런 작업멘트 같을지라도 이 위대한 노력과 실패는 누가 뭐래도 인연이다.


4. 3번째 이별


불편하고 서글프던 만남이 끝나고, 해성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다음생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때보자"

라고 말하는 해성은 택시를 타고 왼쪽으로 향한다.


노라는 한참을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남편에게 안겨 아마도 마지막으로 나영이 되어 펑펑 울며 해성을 떠나보낸다. 그러고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해성은 오른쪽으로 향하며 공항으로 간다. 3번째 이별이 되어서야 해성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며 이 인연을 마무리 짓는다. 끝이 아닌 이전 생의 인연으로 남겨둔다. 이제 해성오른쪽으로 향하며 다음 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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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꽤나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고 그녀와 함께 이 영화를 보며 울지는 않았지만, 아마 혼자서 봤다면 마지막에 펑펑 울었을 듯 하다. 저기서 언급한 저 첫사랑과 동시에 고등학교때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떠올랐는데, 그녀와는 어중간하게 헤어지고 1년뒤 다시 만나 확실히 마무리를 지었던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와 마지막 악수를 나누는데 그때 그 손을 놓는게 정말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는 이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그 느낌을 알기에 마지막의 나영의 울음은 너무나 공감되는 울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연이란 그저그런 작업멘트일지라도 너무나도 소중한 것인 듯 보인다. 시작과 끝이 어땠든 그 인연은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고, 돌아봤을때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나의 과거가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인연들 덕분에 늘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인연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고, 지난 인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답고 그리운 영화를 만들어준 셀린 송 감독님과 그레타 리, 유태오 배우님께 감사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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