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
신은 존재할까?
성당을 가지 않은 게 벌써 몇년이지만, 이전까지 성당을 오랜 기간 다녀온 나에게 늘 따라다녔던 질문이다. 중고등부 학생회 회장까지 했던 나에게 성당은 청소년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매주 성당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분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기도로 성가로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신의 존재, 그분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진심으로 힘들었던, 펑펑 울었던 세 번의 사건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10대에 정말정말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을 때,
20대에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30대에도 한 번 있었는데 이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첫번째 사건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학창시절. 난 모범생이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모든 시간 모든 날을 죽도록 미친듯이 공부하진 않았지만, 주어진 시간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 늘 상위권 성적을 거두었고, 고2때부터 내신만큼은 문과 전교 1등이었다.(수능은 내신보다는 떨어졌다.) 그렇게 최상위권 대학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서울대 지역균형은 원하는 학과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했고, (전교3등인 나에게까지 주어지는 지역균형을 4등에게 양보했다. 4등은 서울대를 갔다.)
고려대와 연세대에 수시 1차 2차 모두 지원했다. 당시 고려대는 논술로 준비했고, 연세대는 면접으로 준비했다. 논술학원, 면접학원을 다 다니며 연고대생의 꿈을 꾸었지만, 내게 돌아온 건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였다.
정말정말 가고 싶었던 연고대였지만, 두 대학 모두 나에게 자신들의 타이틀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거기에 그쳤다면 신의 존재까지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성적이 떨어지는, 평소 놀 거 다 놀고 다니는 같은 반 친구녀석이 연세대에 합격했다. 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연세대 합격으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 친구가 가져갔고, 학교 신문에 대학 잘 간 선배로서 인터뷰까지 실렸다. 인정할 수 없었다.
연세대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하교길에 성당에 들렸다. 저녁미사가 없는 평일이라 성당 안은 고요했고 난 맨뒷줄에 앉아 가만히 십자기를 응시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신을 원망했다.
그런데 신의 존재를 의심할 때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위로해준 건 신의 존재였다. 나의 이 불행을 납득할 방법, 이겨낼 방법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게 주신 시련이 '그분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졌고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힘을 달라고 기도를 하는 내 자신을 매번 발견하곤 했다.
언제 다시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길지 모르겠다. 내가 성당 안에서 성장했듯이 우리 딸도 성당 안에서 성장했으면 좋겠지만, 큰 결심이 필요해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기도'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지지할 때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이다.
신의 존재하고 안 하고는 이제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내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게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내가 기도하는 이유이고,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