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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Aug 27. 2024

13번째 직장을 다니며 느끼는 것들#2


문워크


회사의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을 때 ('아 이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스칠 때), 나에게 항상 드러나는 버릇이 있다.


바로 퇴사를 향한 뒷걸음질.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지금 13번째 직장인데 또? 제 정신?' 이라는 반문이 가장 크게 막아서긴 했지만, 한가지 새로웠던 건


'이거 지난번 퇴사랑 비슷한 루틴인데?'


라는 생각이 든것이었다.


그래, 은혜였다.

이것으로, 적어도 지난번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퇴사 유도하는 감정


회사의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을 때 나에게 찾아오는 감정들은 다음과 같이 순차적이다.


wave 1.  '뭐야 이거'


wave 2.  '아 안 좋은데'


wave 3.  '...기분이 안좋아지네'


보통 이런 식이다.


3번의 생각이 머리와 마음속에 그득해지게 되면, 입에도 불만이 그득해진다.


그리고 생각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보통 다음의 둘 중에 하나다.


'회사가 다 그렇치뭐'

아니면

'어떡하지.. 다른데 알아봐야 하나'



'회사가 다 그렇치뭐'


일반적인 결론이다. 회사가 다 그런 것이고, 인생이 원래 그렇다는 결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는 생각은 결국 무력감으로 나를 몰고 간다.


그리고 무력감을 잊기 위해 뭔가를 한다. 유튜브를 잔뜩 보든 아니면 친구들과 만나 푸념을 몇시간 늘어놓든 잊어버리기 위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계기가 생기고 이 불만이 찾아올때, 이전보다 더 큰 압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때 해결하지 못했던 감정에 이자라도 붙은 것처럼, 더 큰 한숨이 나온다.


고민은 다시 하겠지만, 압박속에 건강한 결정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무력감을 잊기 위한 더 강한 자극을 찾거나 더 오랜 시간을 유튜브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다음 스케줄에 밀려 결국 그 감정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덮고, 일정을 살아가지만, 나는 잊은 줄 알았어도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어떡하지.. 다른데 알아봐야 하나'


그렇다. 퇴사를 또 하는 것이다 ㅎ

그러나, 이직의 횟수를 채우는 것에 쏠쏠한 재미를 느낀다면 몰라도, 사실 이직은 그리 유쾌하기만한 과정은 아니다. 과정 자체에도 적응의 과정이 필요하며, 결국 그곳에도 ㅎ 역시 숙제가 있고 풀어야 문제들이 있다. 그렇다. 어딜 가더라도 직장은 여전히 비슷하다.



여기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바로 마음을 더 들여다 보는 것이다.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사실 어른이 되면서 잘 안쓰는 단어다.

아마 '사내 녀석이..' 또는 '다 큰 사람이...'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가며, 자라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감정에 대한 네이밍이 쉽진 않다. '기분이 별로네'라고 하고, 거들떠 보기 전에 별로인 기분을 없애기 바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우연히 유튜브 쇼츠를 1시간 넘게 본 적이 있다. 머리는 멍해지면서도, 내가 어떤 감정이었었지?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었다)


교회에서 '우리의 마음은 Slow Learner'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은 우리의 일상보다 천천히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진행하며 살기 바쁘다.


나의 두려움을 인정할 때, 일단 진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마치 진단을 내려야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것처럼.



두려움인식되었을  회복이 시작된다.


물론 두려워서 도망가려는 건 아니다. 감정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내 날것의 감정을 감정의 우물에서 길어냈을때, 이 소중한 감정을 아무에게나 말하면 안된다.


'아 뭐 다 그런거지 뭐'


'얘는 뭐 새삼스럽게 그러니 다 커가지고'


이런 소리 들으려고 나의 감정을 어렵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감옥에서 이제 나온 사람의 입을 읍읍 막고 다시 그 우물안으로 던져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혹시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거대 기업을 쪼개는 결정을 하는 것이 전략적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고 했었던 어린시절부터 남아있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화를 보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치 그런 것처럼, 실마리가 되는 이러한 소중한 감정은 이것을 겪어본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얘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면서 공감 받고, 받아들여져야한다. 그럴 때 우리는 회복 되기 시작한다.



나의 경험


지난주 퇴근길,

이 감정이 찾아왔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그런거지 뭐'하며 지내다가 간밤에 유튜브 쇼츠를 1시간 넘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3분 정도 자책을 하다가, 문득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이것에 대해 '믿을 만한' 분들과 얘기를 나누었고, 기도 요청을 했다.


그러자 나의 마음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그랬구나'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묶여있던 무엇인가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용납, 결국 사랑이었다.  물론 무조건적인 용납이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부일 것이다. (또는 나를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거나) 그러나, 그것이 사랑에 기초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행위가 될 것이다.


사랑이 용납을 타고 두려움에 닿았을때 답답함이 해소되었고, 이내 그것이 마음에 흘러들어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Outro.


패턴을 인식했고, 두려움을 인지하고, 위로를 경험했다.


뒷걸음질은 멈춰졌다.


이제 두려움이 아닌 희망과 기대에 기초해서

이직을 알아봐야겠다

진로를 잘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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