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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Sep 06. 2024

퇴사의 재발견 #14_바이오신약개발

그렇게 다시 두 달이 지났고, 무더운 여름이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에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바이오스타트업이었다. (당시에는 바이오회사가 참 인기가 많았다).


막상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으니 가고 싶어졌다. 직장에 가면 육아에서도 해방되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 약 6개월간의 육아로 많이 지쳐있었다. 아울러, 최근에 뜨고 있는 바이오에 관심이 많이 가긴 했다. 과연 바이오회사는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결국 면접을 보았고, 무리 없이 합격을 하게 되었다. (면접에서 별다른 질문이 없긴 했다..본인의 이력을 말씀하시는 시간이 절반정도 되었던 특이한 면접이었다.)


바이오신약개발회사에는 일반적으로 신약이 될 것으로 강하게 예상되는 좋은 물질이 있다. '예상된다'라고 하는 것은 아직 거쳐야 할 단계가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신약이 되기 위해 비임상과 임상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보통 그 과정이 최소 10년이고, 성공확률은 1%미만 이다. 그 좋은 물질이 이 회사의 핵심자산이고, 사실 미래인 셈이다.


실제로 바이오신약개발회사가 돈을 버는 경로는 신약판매가 아니라 기술이전이다. 기술이전은 개발 중인 물질의 권리를 제3자에게 파는 것이다. 라이센스 아웃이라고 하며, 한국도 기술이전이 예전보다 활발해지고 있었다.


회사는 아직 비임상전이었다 (스타트업이 대부분 그렇다). 비임상을 시작하려면 1년 정도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고, 실험 진척상황에 따라 또 투자금을 받고, 그러다가 (잘 풀리면) 상장을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바이오회사를 보고 꿈을 파는 회사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여튼 부푼 꿈을 가지고,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처음엔 회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내가 여기 앉아있기만 해도 돈을 버니까.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때에도 점심밥도 차려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 (매번 해먹기가 힘들긴 했던 모양이다)  웬지 이 회사는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는 한차례 투자를 받았다. 시리즈A투자로 Major한 VC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대응했던 나로써는 뿌듯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하기 시작했다.


회사에는 실질적인 대표가 있고, 명목상의 대표가 있었다. 명목상의 대표님은 서류상으로 대표님이며, 하시는 일이 없다 (존재하는 것이 그분의 일이다). 실질적인 대표는 일신 상의 이유로 사실 대표지만, 서류상 대표는 아닌 분이었다. (스타트업에서 이런 광경은 가능한 광경이다)


돈 맛을 알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던데,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고가의 연구기기를 사서, 다른(?) 회사에 놓으시겠다는 것이다.


 '다른 회사?'


알고 보니, 실질 대표님에게는 회사가 하나 더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충격은 이게 왜 안되냐며, 화를 내는 실질 대표님의 모습이었다. 배임인데, 대놓고 배임을 해내라는 (?) 요구였다. 나는 그 뒤로 찍혔는지, 나에게 자주 자주 얼굴을 붉히셨다.


한번은 나에게 골프장 예약을 지시하셨다. 회원권이 없어서, 회사 다른 임원분의 지인의 부하직원을 통해서 회원권을 예약해야하는 상황이었다.

- 회사 직원도 아니고,

- 회사 직원의 지인도 아니고,

- 회사 직원의 지인의 부하직원에게 회원권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


업무를 떠나서, 그 사람에게 과연 예약을 해주고픈 마음이 생겼을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루트 루트를 통해서 요청하는 것이 나나 그사람에게 얼마나 껄끄러운 일인가;;; 참 없어보이기도 했으나, 우리 실질 대표님에게 그것은 본인의 위치에서 당연히 가능한 일로 보여졌던 것 같다. 성공의 향기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돈 맛을 보았기 때문인지.. 알수는 없었다.  


골프장 예약은 실패했다. 실질 대표님께 보고를 드리자, 나를 쏘아보셨다. 알겠다고 하며 나가보라고 했다. 대표님 방문을 닫을 때 뭔가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무시했다.


충격은 그날 밤이었다. 그날 밤 술에 취하셔서 서너차례 연락이 왔다. 실망스럽다며. 너는 그렇게 일하면 안된다며. 네네네네 하며 전화를 받았다. 별로 기대도 없으니 감정에 동요도 없었던 것 같다. 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다. 아내는 내가 대단한 실수를 한 줄 알았다고 했다. 한밤중에 전화가 오니 그럴만도 했다.


다음날 대표를 만났지만, 전날밤의 통화는 역시 전혀 기억에 없는 것 같았다.


상도와 일반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들.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불편한 일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연구는 언제부터인가 뒷전으로 밀린 것 같았다.


다시 그 녀석이 찾아왔다.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출근길에 여섯 번째 직장의 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 화면에 xxx 회사 xxx 팀장님이 떴는데, 핸드폰 화면을 보자마자  뛸 듯이 기뻤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나서는 더 기뻤다. 팀장님은 잘 지내냐며, 혹시 돌아올 생각 없냐며  묻는 것이었다. 정말 날아갈 것 같이 기뻤다. 하지만 다시 지방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하하하하 이렇게 기쁠 수가!'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물론 소리치지 않았다. 혼자 흥분해서 환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약간 미친사람처럼) 사람들과 출근 인사를 했다.


힘이 났다. 누군가 나를 특별히 본다는 사실, 그 인정받고 있음이 너무 좋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에게 말은 안했지만, 내 마음은 소리치고 있었다.


'나 아직 안죽었어! 나 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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