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는 이제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는 계란말이라고 부르고, 아이들은 수수라고 부른다. (왜 수수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가끔씩 요리를 하면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아내는 끄덕거리며 '음 훌륭해'라고 얘기해주곤 했다. 그 칭찬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칭찬을 해주니, 계속 요리를 시도했다. 딱히 요리 실력이 느는 것 같진 않았지만, 계속 시도했다.
다시 퇴사한지도 이제 4개월이 되어간다.
슬슬 자신의 모습에 대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의 가장으로써 뭔가를 해야겠다는 압박이 스스로에게서 느껴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 자신의 진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진로는 '너는 하고 싶은 게 뭐니'라는 질문으로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것보다 훨씬 복합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하고 싶은 게 과학자라면 내가 과학자로 일하면서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알기까지, 사실상 그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알아내기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니 단기간에 파악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 그 직업에 대해서 얘기해준다고 해도 그것 또한 그 얘기해주는 사람의 경험에 한정될 뿐, 선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배경이나 근거들을 제공해주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순수하게 고민을 하기보다,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버는가?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얼마나 잘 견디고 할 수 있는가?'가 진로에 대한 대안적인 질문이 되는 것 같다. 직장인들끼리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대다수의 답은 아마 '퇴사하는 거요' 또는 '돈 많이 버는 거요'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진로는 머리 아픈 주제이다.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벌지?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얼마나 잘 견디고 할 수 있지?'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적당하게 힘들고, 가정생활도 잘하면서, 돈도 그럭저럭 벌 수 있는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다. 원래 전문성이 없었으니,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다. (물론 이력서에 그렇게 쓰진 않는다. 그리고 양복입고 그런 얘기는 안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일을 하고 싶다.
아이들이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회사원은 하기 싫다고. 엄마랑 아빠는 퇴근하고 오면 너무 피곤해 보이고, 짜증 낼 때가 많다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할 말이 없다. 그 얘기를 듣고 '표정을 밝게 하고 집에 들어와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뿐이다. (불가능하다.)
어느날 집에서 짜파게티를 먹고 오후에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까지 약 1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1시간 뒤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야 한다. 오늘의 자유시간은 1시간 남았다) 뭘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구직사이트를 한번 열어볼까 말까 소파에서 빈둥거리며 있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나와 같은 시기에 직장을 그만둔 직장 선배였다. 그 직장선배와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았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실업급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자발적인 퇴사를 했을 경우, 실업급여가 안 나온다. 해고를 당하거나, 권고사직을 당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나와 그 선배의 경우 자발적인 퇴사이지만 회사의 지방이전으로 인한 퇴사의 경우 실업급여가 나온다는 것이다.
눈이 번쩍 뜨였다. 고맙다고 연신 그 직장선배님께 말씀드리고, 바로 서울고용노동센터에 전화했다. 그리고 마침 내일이 갈 수 있는 날이어서, 바로 다음날 찾아갔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예상을 못했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분은 엄청 피곤해 보이셨다. 힘든 사연을 많이 들었던 모양인지, 목소리에도 힘이 별로 없으셨다. 옆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인지 대화를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 지르면서 얘기하시는 실업자분을 보니, 그 공무원 분의 고충이 이해가 되었다.
무사히 상담을 마쳤다. 소명하거나, 설명할 내용도 별로 없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달성해야 될 조건들과 주의사항을 전해 들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워크넷이라는 사이트에서 구직활동을 했고, 내가 구직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전송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눈이 열렸다.
그리고,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일은
그동안의 깨달음(https://brunch.co.kr/brunchbook/discoverquitjob)과 이직을 연결시키고 융합해내는 일이 남았다.
약간 긴장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