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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G Feb 17. 2020

Ghosteen (2019)

거대한 슬픔을 맞닥뜨린 후에 남겨진 감정.

거장. 영어로는 master. maestro. 혹은 virtuoso. 습관적으로 우리는 ‘거장의 품격’이라는 어구를 다양한 곳에 사용한다. 한 분야에서 평생을 자신의 직업으로, 직업을 넘어서 인생 그 자체가 될 정도로 헌신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같은 사람이지만 일종의 초월적 존재를 보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한 평생 물리학이나 수학 등의 세부 분야를 탐구하여 인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병자를 소생시키는 의사나 한의사, 4년동안 실력을 갈고닦아 올림픽에 나가서 신기록을 세우거나 메달을 쟁취하는 운동선수들. 그리고 ‘거장’이라는 단어의 무게감과는 별개로, 각자의 분야에서 평생을 바치는 우리 주변의 누구든지 거장으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평생 운전대를 잡고 지친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택시기사들, 몇십 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손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해온 식당 아주머니 등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누구나 제각기 분야의 거장이 되어간다.

시작이 꽤나 거창했는데, ‘거장’의 영어 단어 중 maestro나 virtuoso는 특히 음악 분야의 거장, 명연주자등을 주로 의미한다고 한다. 대중 음악계로 한정지어도 충분하지만, 클래식 시대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 존재해왔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 소개할 1957년생의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배우, 또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Nicholas Edward Cave, Nick Cave(이하 ‘닉’)는 호주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30여년간 ‘Bad Seeds’라는 밴드로 발매한 17개의 정규 앨범은 대부분 호평을 이끌어냈고 음악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였다. 그의 노래들은 Johnny Cash, Metallica, Snoop Dogg 등 훌륭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되기도 했고, 2017년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 중 오피서(Officer of the Order of Australia) 등급을 수훈했다는 점을 헤아려보면 닉을 현 시대의 maestro라고 부르기에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닉은 스쿨 밴드인 ‘The Birthday Party’로 음악을 시작해서 활동 초창기에는 Post-Punk와 Gothic Rock을 기반으로 건조하면서 퇴폐적인  음악을 했다. 그러나 Post-Punk의 직계 자손이라고 여겨졌던 닉은 결코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일생동안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한 선배들, Tom Waits나 David Bowie 등의 솔로 아티스트들의 뒤를 이어 그들의 명성에 무색하지 않게 다양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였다. ‘No More Shall We Part’에서 그는 Piano Rock을 시도하며 Art Rock으로의 변화를 시도하였고, ‘Push The Sky Away’부터 ‘Skeleton Tree’, 그리고 이번 ‘Ghosteen’까지 이어져 온 3부작에서는 기존의 락적인 요소를 최소화한 채 전자음과 클래식 악기를 전면에 사용하여 완연한 본인만의 아트록을 표현하였다.

닉의 이 3부작에 관해서 15년도에 발생한 그의 아들 Arthur(이하 ‘아서’)의 추락사고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평론이 줄을 이었다. 사고 이후 16년도에 발매된 ‘Skeleton Tree’는 기존의 그의 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앰비언트와 드론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죽음의 슬픔으로 검게 물든 앨범 커버와 가사의 내용과 함께 어둠과 슬픔으로 침잠하는 분위기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후 인터뷰에서 닉은 스켈레톤 트리의 대부분의 곡은 아서의 죽음 이전에 만들어졌고, 그의 죽음으로 수록곡의 일부 가사가 변경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사실 그의 음악적 변화는 Bad Seeds 멤버의 변화로 인한 이유가 가장 크다. 2008년에 발매된 ‘Dig, Lazarus, Dig!!!’을 마지막으로 Bad Seeds 밴드에서 The Birthday Party부터 Bad Seeds까지 오랜 기간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Mick Harvey가 탈퇴하고, Bad Seeds에  ‘Let Love In’의 세션으로 처음 합류하여 97년도부터 정식 멤버가 된 Warren Ellis가 메인 작곡가로 격상하고 나서 현재의 음악적 성향이 정착되었다. 바이올린, 피아노, 아코디언, 플룻 등의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multi-instrumentalist인 그는 닉의 3부작 프로젝트부터 본격적으로 아트락적인 요소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2012년에 발매된 삼부작의 첫 앨범 ‘Push The Sky Away’는 앰비언트와 피아노, 현악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였지만 아직 일렉 기타를 비롯한 펑크록적인 요소는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발매된 두 번째 앨범 ‘Skeleton Tree’는 위에서 말했듯 앰비언트와 드론 사운드 등 일반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일렉트로닉의 요소를 차용하였다. 그리고 2019년에 발매된 삼부작의 마지막 앨범 ‘Ghosteen’은 일반적인 락밴드의 앨범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락적인 요소가 거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아들 아서의 죽음 이후로 발매된 닉의 첫 앨범이기도 한데, 고스틴의 첫 인상은 전작인 스켈레톤 트리의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전작에서 활용된 앰비언트 사운드가 이번 앨범에서도 주로 등장하지만, 피아노와 현악의 반주가 곁들어진 분위기는 사뭇 엄숙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앨범의 제목인 ‘Ghosteen’이라는 단어는 닉이 일전에 ‘migrating spirit’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는데, 이를 내 개인적으로 해석하면 ‘Ghost’와 ‘Teen’의 합성어로, 위에서 언급한 아들 아서의 죽음과 그의 영혼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닉은 이 앨범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앞의 8곡을 ‘children’, 뒤의 3곡을 앞의 곡들의 ‘parents’라고 표현했다.

‘아이들’ 트랙의 첫 곡인 ‘Spinning Song’에서 로큰롤의 대부인 Elvis Preseley에 대한 헌사가 등장하고, 뒤이어 ‘Bright Horses’에서 단조의 하강하는 피아노와 현악 선율이 등장하며 감정적으로 하강하는 느낌을 주고 이후 빛나는 말, 불꽃으로 가득 찬 말갈기 등 신비로운 존재의 언급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곡은 모두 막바지에 자신의 아들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가 실려있는데, 이를테면 ‘Spinning Song’에서는 ‘And I love you.’라는 말을 반복하고, ‘Bright Horses’의 마지막 가사는 ‘But my baby’s coming home now, on the 5:30 train.’ 심지어 다음 곡인 ‘Waiting For You’는 제목부터 노골적이고 이후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반복해서 읊조린다.

이후 남은 ‘아이들’의 트랙들에서도 서로 비슷한 구성을 나타내는데, 일반적인 앰비언트 음악처럼 느리면서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며 피아노와 현악 반주가 곁들여지고, ‘나비와 잠자리들이 날아다니는 숲속에 있는 타오르는 말들과 작열하는 나무들’, ‘아이들이 나선형으로 태양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 ‘날아오르고 추락하기를 반복하는 갈레온 선’ 등 앨범 커버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상화하는 소재들이 다수 등장한다.

‘아이들’의 트랙들 중 ‘Ghosteen Speaks’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아들 아서의 영혼인 ‘Ghosteen’이 말하는 듯한 내용이 등장하는 데, ‘나는 네 곁에 있고, 너는 내 곁에 있어.’, ‘내 친구들이 나를 위해 여기 모였다고 생각해.’라고 하며 현실에 남겨져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픈 미련을 되뇌인다. ‘Leviathan’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닉이 화자가 되어 직접적으로 ‘I love my baby and my baby loves me.’라고 반복한다.

이제 ‘아이들’의 트랙이 끝나고 ‘부모들’의 트랙이 시작되는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앨범과 동명의 트랙인 ‘Ghosteen’은 러닝 타임이 12분 10초에 달하는 대곡으로, 앞의 ‘아이들’ 트랙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상징물, 아들을 암시하는 대상들과 화자인 닉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고 성숙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아들 아서를 상징하는 고스틴이 닉의 손에서 춤추고, 여행 가방을 손에 들고 떠나가는 남자도 있고, 뒤이어 세 마리의 곰이 등장하는데 그 중 아기곰은 보트를 타고 달로 떠나버렸다고 한다.

이제 닉은 자신이 사랑을 말하고 있다고 순순히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을 때와 멀리 떨어질 때를 밀물과 썰물에 비유하고, ‘There’s nothing wrong with loving something you can’t hold in your hand’, ‘There’s nothing wrong with loving things that cannot even stand’ 등 ‘거센 물살에 못 이겨 영영 떠나가버린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한다. 이후 등장하는 spoken word 트랙인 ‘Fireflies’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가 ‘죽어가는 별에서 흩뿌려지는 광자들’, ‘항아리 안에 갇힌 반딧불이’이고 모든 것은 별처럼 서로 아득히 멀리 있다고 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아득하게 체감하는 닉은 뒤이어 ‘I am here and you are where you are.’라고 반복하는데, 이는 앞서 ‘아이들’의 트랙 중 ‘Ghosteen Speaks’에서 ‘나는 네 곁에 있고, 너는 내 곁에 있어.’라는 가사와 사뭇 대조되는 듯 하다. 닉은 삶과 죽음을 경계로 헤어진 아들과 자신은 분명히 다른 세계에 존재함을 인정하고, 현실 세계에 남겨진 자신을 더 이상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그늘에 남겨두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인다.

마지막 곡인 ‘Hollywood’에선 ‘Spinning Song’에서 나온 구절인 ‘Peace will come.’, ‘Time will come.’이라는 심적 안정을 바라는 막연한 미래형 어투 대신 ‘I'm just waiting now, for my time to come.’, ‘I’m just waiting now, for peace to come.’라며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내적인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지적인 문체를 사용한다. 그리고 불교 설화 중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부처님에게 부탁한 Kisa Gotami(이하 ‘고타미’)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데, 부처님은 그녀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 중 죽은 이가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구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그런 집은 한 군데도 없었고, 고타미는 겨자씨를 하나도 구하지 못한다. 고타미는 죽어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울고 또 울면서 ‘Everybody’s losing someone.’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It’s a long way to find peace of mind.’, ‘I’m just waiting now, for my time to come.’, ‘I’m just waiting now, for peace to come.’이라는 문장들로 끝맺는데, 이것들은 닉의 오랜 인생을 거쳐오며 얻은, 어쩌면 우리네 삶의 본질을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의 해답처럼 들린다.

이 앨범의 주제 의식이 커다란 슬픔을 조우한 후의 남겨진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 트랙에서 여러 상징물과 표현으로 사랑하는 이와의(아무래도 이 앨범은 닉의 개인사와 떼서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별로 인한 슬픈 감정을 연속 스펙트럼처럼 펼쳐보였다면, ‘부모들’ 트랙에서의 닉은 좀 더 성숙한 태도로 자신의 상태를 고찰하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음 속 깊숙이 맞이하려한다. 하지만 ‘이별’,’슬픔’, 그리고 ‘고독’을 주로 다루는 이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 전작에서 어둠 속으로 깊이 침잠하던 앰비언트, 드론 사운드에서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앰비언트 사운드는 유지한 채 앨범 커버 사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상징물들의 이미지와 차분하고 정갈한 classcial sound는 스켈레톤 트리의 ‘네가 필요해.’라고 반복하며 울부짖는 상태에서 벗어나 한 줌의 여유를 가지고 ‘곧, 나의 시간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화자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30여년간 싱어송라이터로, 밴드 프론트맨으로, 배우로, 또 작가로 끊임없이 masterpiece를 창작해 온 Nick Cave는 그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생성한 엄숙하고 신비로운 대서사시로 자신을 비롯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슬픔, 그리고 내적인 평화라는 감정을 그만의 방식으로 전달한다. Nick Cave & The Bad Seeds의 3부작 중 마지막을 담당하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의 아웃트로를 들으면서 우리는 ‘거장의 품격’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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