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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jaroazul May 11. 2023

퇴근길 우울

 출근하면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낮 약에 항우울제가 들어있어 캡슐이라도 빼서 먹으라는 의사의 말은 퇴근길에서야 기억이 난다, 늘.


하여간 꾸준히 안 먹으면 뭐 되는 게 정신과 약이다. 먹어야 계약기간 동안이라도 일할텐데, 이랬다 저랬다 하니 힘이 더 들긴 한다.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기상은 다섯 시 반, 출근만 한 시간 반에, 데스크에 앉는 시간은 여덟 시. 오후 다섯 시가 넘으면 앉아있는 게 무의미해진다. 퇴근 태그와 함께 내 정신줄도 체크 아웃. 통증을 못 견디고 필라테스에 가끔씩 나가는 것 외에 하는 건 없다. 취미나 공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엿같은 일이나 얄미운 동료가 떠오르지만 금세 포기한다. 매달려 욕할 체력이 없다. 친구들은 별로 좋은 친구들이 아니다. 돈은 빌려주지만.


이럴 땐 집에 배우자라도 있으면 나을까 싶다가도, 결혼 안 한 인간이 없는 (또래 포함) 회사를 생각하면 그것도 답은 아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내 에고는 거드름을 피운다. 그렇게까지 해요?라는 말에, 내가 남들처럼 결혼하고 애 얘기 안 해도 되는 근거라도 되는 것처럼 매달린다.


결혼하기에 너무 뛰어난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런 게 없다면 만들어보고 싶다. 바벨탑을 지은 우매함이어도 어쩔 수 없다. 20대 때 우매하고 싶다-어지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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