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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jaroazul Jun 22. 2023

퇴근길 조울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우울해지는 회사원

 조울은 상당히 어려운 개념으로 다가온다. 미디어의 묘사가 극적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양극단을 오갈 수 있는 환자의 스태미나가 신기해서인지. 우울은 친숙하지만 조울은 유니콘 같다. 음, 같았었다.


 건강한 인간이라 해도 결국 호르몬의 노예라, 시간 흐름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게 정상이다. 보통 아침에 좋았다가 저녁이면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병의 유무는 정도로 판가름 나는 것일까.


 이번주 내내 작은 수술을 받느라 근무시간이 줄었었다. 퇴근도 이에 맞춰 늦게 했고, 와중 심증으로만 갖고 있던 의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28살 현재 내 삶에서 그나마 즐거운 시간은 근무시간이다. 재택도 싫다. 어지간하면 역삼 오피스에 나와있는 쪽이 좋다. 6시가 다가올수록 상태는 더욱 기괴해지는데, 반자동적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과 "벌써 퇴근이라니!"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공존한다. 객관적으로는 쉬어야 하건만 어딘가 불편하다.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봐야 하는 것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것도 꺼림칙하다. 그 틈에서 느껴지는 공허가 무겁기만 하다.


 나는 취미가 과하게 많았던 사람이다. 책도 영화도 구경도- 할 거리가 너무 많아 탈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십 번 본 시트콤을 백색소음처럼 틀어놓고는 누워서 뒤척이며 약 먹을 시간을 기다린다. 배도 딱히 고프지 않다. 회사에서 간식을 열심히 먹었기 때문이다.


 눈썹을 씰룩대며 운동하라는 인간들이 떠오른다. 이미 하고 있다네. 그게 문제가 아니야. 회사 일이 아니면 살아있는 시체가 된다는 게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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