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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누리 Jan 30. 2021

#3. 언 바다에 배 띄우기

2016년 봄이 오기 전 겨울의 추위는 내가 겪어본 것 중 가장 매서웠다. 돈 없는 막내작가의 엉성한 외투 때문도 아니었고, 크기가 미세하게 맞지 않아 바람이 드는 자취방 현관문 때문도 아니었고, 구멍 난 컨버스 신발 때문도 아니었다.     


- 아니~ 바다가 얼어서 배가 못 뜨니 잡이를 나갈 수가 있나? 나 원 참

“그럼 아예 조업을 못하고 계신 거예요?”

- 그렇지요, 이렇게 추워선 나가도 잡지도 못합니다.     


오늘의 28번째 통화였다. 나는 힘없는 ‘네, 알겠습니다’를 끝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창밖에 휘날리는 눈발이 철천지원수보다 더 원망스러웠다. 소리없는 아우성과 함께 머리칼을 꽉 쥐니 얄팍한 머리카락이 우수수 뜯겨져 나왔다. 탈모가 오는 듯 했다. 2개월 차 막내작가의 고통이었다.     


내가 처음 하게 된 프로그램은 아침 교양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여느 정보프로그램이 그렇듯 여러 코너로 구성되어있었으며 메인작가, 서브작가, 막내작가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내가 했던 프로그램은 여행, 다큐, 정보 이렇게 세 코너로 나뉘어있었고, 메인작가 한 명, 서브 작가 두 명, 막내작가 한 명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서브 작가 둘이 한 코너씩을 담당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코너는 메인작가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말은 즉, 한 코너가 오롯이 내 차지여야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코너의 촬영구성안, 편집구성안을 말 그대로 ‘작성’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섭외, 스케줄링, 자료조사, 촬영계획, 사전인터뷰 등을 도맡아 했어야 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었기 때문에 휴대폰 하나 덜렁 들고 전쟁터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내가 맡은 코너는 ‘여행’ 코너였는데, 단순히 여행만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풍경도 봐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대표 여행코스도 돌아봐야 하고, 그 지역 특산물을 직접 채취하거나 잡아봐야 했다. 그렇게 해야 15분짜리 여행 코너 한 편이 완성될 수 있었다.     


장소를 섭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갈 곳을 정하고 인포메이션이나 지역 내 관할 부서에 연락하여 동의만 구하면 될 일이었다. 풍경 역시 대신 다녀준 누리꾼들의 힘을 빌려 그림이 예쁜 곳을 초이스만 하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잡이’였다.    

 

‘잡이’는 여행 코너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였다. 잡기만 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잡은 것을 먹기까지 해야 진정한 프로그램의 완성이었다.     


갈 곳을 정하고, 찍을 것들을 정하고, 이제 ‘잡이’만 해결되면 되는데...     


나는 ‘무슨 무슨’ 리의 어촌계로 29번째 전화를 걸며 생각했다.     


이 엄동설한, 바다도 얼어버려 어민들도 포기한 이 마당에 도대체 내가 이 휴대폰 하나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에 전화를 많으면 50통, 적어도 2~30통은 해야 하는 탓에 휴대폰 요금제를 통화 무제한으로 바꾼 지 오래였고, 내 자리 콘센트엔 항상 충전기가 꽂혀있었다.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3년 차 스마트폰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000 계장님 맞으시죠? 저는 000이라는 TV프로그램의 강보라 작가라고 하는데요.”     


음성녹음기를 틀어놔도 될 법한 고정 멘트를 시작으로 20번째 처절한 섭외가 시작되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목이 쉴 지경이었다. 혀가 아린 것 같기도 했다. 벌써 일주일 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소득 없이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메인 작가가 출근해 오늘의 진행 상황을 물어볼 것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후 7시. 메인작가가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짙은 담배냄새를 풍기며 사무실에 나타났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믿지도 않는 하나님에게 빌었다.      


살려주세요.    

 

“잡이 섭외 됐니?”

“아 그, 요새 도치가 철이라고 해서 도치잡이 쪽으로 알아봤는데요. 바다가 얼어서 배를 못 띄운다고...”

“그래서?”

“잡이는 섭외가 안될 것 같아요”

“충분히 다 알아보고 하는 얘기야?”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 표정에 숨이 멈췄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강릉으로 내려가 어민 분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럼 잡이 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알아봐야지. 당장 다음 주에 촬영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자꾸 밀리면 다음 주에도 못 나가. 어제는 어디서 연락 주기로 했다면서?”

“거기도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같은 건 뭐야? 말을 똑바로 해”     


사납게 한참을 쏘아붙이던 메인 작가는 메인 피디의 부름에 회의실로 들어가고,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내 극도의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치미는 구역질을 참지 못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욱, 우욱!”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먹은 것이 없어 속이 쓰렸다. 변기물을 내리고 나와 세면대에서 입을 헹구는데 거울에 비친 흙색 낯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독하게 외롭고, 지독하게 괴로웠다.     


부어오른 눈을 찬물로 씻어내고 자리에 들어와 앉으니 서브 작가들이 커피 한 잔 사주겠다며 나가자 했다. 나는 군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힘들지?”

“바다가 얼었다는데,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러게, 참 방송일이 그래”     


두 작가는 나를 토닥이며 달랬다.     


“저 이 일 더 할 수 있을까요?”

“아직 2개월밖에 안됐잖아.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시기만 지나면 좀 괜찮아질 거야”

“전 모르겠어요.”     


그렇게 한참, 그녀들은 막내의 두서없는 넋두리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보라는 오늘 진행된 것까지 정리해서 나 주고 들어가”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나는 조용히 파일 하나를 메신저로 보내고 노트북을 덮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용한 사무실에 나의 공허한 인사소리가 흩어졌다.     


짙게 검은 하늘 아래 인위적인 조명만이 내 발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20분만이 하루 중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가장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회사나 집에 혼자 있을 땐 나는 죽어있다, 나는 산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일부러 반복했다. 그래야 정말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다.      


그 시간 속에 쌓이고, 입었던 상처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 했다.     


이 20분은 나를 언제나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시끄러운 유흥가를 지날 때면 나는 언제나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 길에 있던 사람들은 매일 밤 남루한 복장의 우는 여자를 어떤 눈으로 쳐다봤을까?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죽고 싶다 말했다. 내 동생에게, 내 친구에게. 부모님껜 차마 얘기할 수 없는 속사정이었다. 매일 걸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거리와 익숙해지지 않는 공기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나 홀로 걷는 이 거리가 아니라,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었다.    

 

밤 10시가 넘어 빛도 없이 한기만 가득한 집에 들어설 때면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안도감과 내일 하루를 또 살아내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대로 잠이 들었다. 불도 켜지 않고, 옷도 벗지 않고, 전기장판의 온기에만 오롯이 의지한 채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스물 셋, 비록 언 바다에 배는 띄우지 못했지만, 하루하루를 힘겹게 띄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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