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다시 얘기하자면, 좋아하는 줄 알았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책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희망사항인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 시간에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아이 키우느라 바쁘다고 직장 다니느라 힘들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책 읽는 시간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책을 읽고 싶었다. 항상 그래 왔던 거처럼 책을 읽었다. 그런데 책이 읽어지지 않았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책을 펼쳐도 곧 덮게 되었다. 읽었는데 지난 부분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책 읽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어느 순간 책 읽는 것이 과중한 숙제 같았다. 필기를 하면서 읽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책 속으로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 가족에게 같이 읽자고 손을 내밀어 보았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다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달랐다. 그리고 서로 편한 사이이다 보니 안 읽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책에 대한 갈망이 흐려지고 있었다. 흐지부지 시간 활용을 못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함께 책 읽어요 라고. 누가 내 손을 잡아주길 간절히 원했었나 보다. 혼자는 못하는 일을 벗이 함께 하자고 해주니 너무 반가웠다. 함께 하자는 꿈블책방의 리더 금소니님의 손을 덜컥 꽉 잡았다. 같은 마음으로 책을 함께 읽기를 원하는 벗들이 모였다. 함께 한 달에 한 권 책을 정해서 정해진 책을 각자 읽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주 토요일 ZOOM으로 만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달이 얼마나 빨리 휘리릭 지나가는지 정신 들기 전에 끝이었다. ZOOM meeting 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잘 읽지 못한 나를 반성하기 바빴다. 책 읽는 것이 힘들었다. 잘 읽어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정해진 시간 안에 읽으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잘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함께 읽은 책이 한 권 두 권 쌓이던 어느 날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시간에 ZOOM으로 만났다. 한 달 동안 함께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감동받은 순간이나 단어로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아직 새벽의 어둠으로 사방이 고요한 시간이었다. 그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벗들의 책 읽는 소리는 감동이었다. 내가 읽은 책을 목소리로 들으며 다시 읽는 것 같았다. 인상 깊었던 부분을 벗이 감동받은 부분이라고 들려주는 순간 벗과 교감되는 것 같았다.
같은 문장을 나와는 다르게 이해해서 들려줄 때는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구나 신기했다. 그런데, 이런 문장이 있었나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냥 지나친 부분을 벗은 이렇게 받아들이고 감동받은 것이다. 새로운 책을 다시 읽는 느낌이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눈으로 읽는 책이 귀로 들릴 때 느끼는 묘한 감동이 새로웠다. 벗과 함께 읽는 책은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