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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M Aug 06. 2020

나는 임차인 국회의원을 원한다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지난 4일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이후 두 국회의원의 연설이 화제가 됐다. 첫 문장은 똑같다. “저는 임차인입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번 부동산 입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는 찬성 표결을 했다.

다음은 용 의원 연설의 일부다.


“저는 임차인입니다. 결혼 3년 차,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은평에 있는 신랑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가라고 하면 어디서 이만한 집을 구해야 하나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임차인인 저는 찬성 표결을 했습니다…오늘 상정된 부동산 세법들이 집값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답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법안에 찬성 표결한 이유는 이 대책이 집값 잡는 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임대차 3법을 시행하자 많은 사람이 거세게 반대했다. '전세는 내 집 마련의 사다리'라는 논리다. 하지만 임대인 대부분은 전셋값으로 투기를 한다. 전세는 내 집 마련의 사다리인 동시에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다.

이후 정부는 수도권에 13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치 계산을 완벽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수는 줄어들 수도 있고 입주가 늦어질 수도 있다. 법으로 전세 제도를 위협해두고 당장 주택을 공급하지 못한다는 것에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국가가 다주택자의 재산을 몰수해 나눠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 때 정한 최저 주거 기준은 1인 가구 14㎡, 4평이다. 용 의원은 “이 최저기준의 삶. 쪽방, 고시원, 옥탑방과 같은 4평짜리 방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평짜리 최저기준의 삶을 살아가는 국민의 대표가 되어주십시오. 보증금이 없어 보증금 1000만원에 50, 평당으로 치면 아파트보다 비싼 월세를 내던 청년으로서 발언대에 섰습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쳤다.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기자의 지인은 하나같이 “가족이 수도권 사는 게 부럽다”고 한다. 고시원에서 산 경험이 있는 지인은 그 시기를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사회 초년생이나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생의 수입이 얼마나 될까? 여기에 고정으로 나가는 월세, 휴대폰비, 보험료, 교통비, 식비를 생각하면 ‘언제 돈 모아서’란 얘기가 저절로 나온다.

미국의 미술가 조이 레너드가 1992년 대선 기간에 발표한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는 대자보를 아시는지. 조이 레너드의 대자보는 위에서 보기엔 황폐하지만 누군가에겐 일상인 삶을 경험한 대통령을 원한다고 날을 세운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해 백혈병이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


조이 레너드의 외침은 정말 백혈병 환자와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우자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의 밑바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살갗으로 느껴본 사람, 그래서 황폐한 땅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윤 의원과 용 의원은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연설을 시작했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달랐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자가는 세를 주고 본인 지역구인 서초구에서 전세를 사는 윤 의원과 보증금이 부족해 월세를 높여 세를 산 경험이 있는 용 의원의 '임차인'이 과연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을까. 둘 중 누가 '최저기준의 삶'을 대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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