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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se Apr 21. 2023

아아, 사랑이여. 아아, 이별이여.

헤어질 결심(2022)

로맨스릴러라고 이 장르를 부르고 싶어지다가,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것이 원래 시작될 땐 스릴러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답장이 올까 안 올까? 나를 좋아할까 안 할까? 그런 고민들은 조마조마한 감정을 일으킨다. 흔히들 얘기하는 '밀당'도 그런 긴장감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로맨스와 스릴러가 교차하는 지점에 이 영화가 위치한다.

또 사랑은 상대방에 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신이란 사람은 내 앞에 놓인 수수께끼이며, 나의 흥미를 유발하는 존재다. 나는 당신을 알아가기 위해 당신의 행동을 시선으로 쫓고, 당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이 과정은 '수사'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영화 내의 둘의 관계성이 더 모호해진다. 형사와 피의자인가, 썸인가?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모호'필름이라는 박찬욱의 제작사 역시, 그냥 지은 이름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박찬욱의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을 꾸준히 그려냈다. 그를 통해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분명히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왔고, 헤어질 결심 내에서도 그런 지점이 분명히 있다. 서래는 살인자인가 피해자인가? 서래와 해준은 사랑인가 불륜인가? 모호성이란 아마 박찬욱의 작가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고 그래서 제작사 이름도 그렇게 지은 것일 테다. ​


산과 바다 역시 비유를 위해 활용한 것일지 궁금했다. 해준의 등산은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 정상이라는 공간은 더이상 알 것이 없으며 '정복'이 완성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해준은 정복 후에 붕괴된다. 한편, 서래는 밀려오는 파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파도를 온 몸으로 다 받아낸다. 파도는 밀려오는 성질 때문에 사랑을 비유할 때 종종 이용되는 메타포다. 서래는 이 사랑이 자신을 잠식시켜도, 그 안으로 들어가 '미결사건'이 되겠다고 '꼿꼿한' 다짐을 한다. 서래는 스스로의 의지로 미결을 완성한다. 이것이 박찬욱식 사랑의 완성이다.

완성되지 못한 사랑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그렇고, <캐롤>도 그렇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그렇고, <로렌스 애니웨이>도 그렇다. (그냥 떠오르는 순서대로 썼는데 다 퀴어영화네..) 상상해본다. 만약 이들의 엔딩이 해피엔딩이었다면, 이 영화 속의 감정들이 그토록 강렬하게 다가왔었을까? 일정 정도는 다가오고 또 좋다고 느꼈을 테지만, 현재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만큼 강렬하게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슬픔은 행복보다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슬픔은 잔류하지만 행복은 휘발하는 것이다.

미결 생각을 하다보니 괜히 반 년 전쯤 친구들에게 나의 미결사건에 대해 한탄을 풀어놓던 때가 생각이 났다. '왜?'라는 의문은 계속 남아있는데, 대답을 해 줄 사람은 홀연히 사라진 상황. 나의 경우 죽은 건 아니고 잠수였을 뿐이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슬픔이 강렬해서 오래 남은 것이기도 하지만, 슬픔은 속성 상 진정한 엔딩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잔류하는 것이다. 마치 이무기처럼. 슬픔은 '만약'이라는 단어로 이 세계에 속박된다. 과거에 대한 미련 - '만약 그때 그랬다면?' -과 미래에 대한 미련 - '만약 지금까지 함께라면?'-이 양쪽에서 팽팽하게 슬픔을 이곳으로 끌어당긴다. 행복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의로 끝난 엔딩은 영영 끝이 되지 못하고, 가슴 한켠에 '미결'스티커를 붙인 채 영구잔류한다.

서래는 이러한 슬픔의 속성을 알았고, 이 관계를 영원히 지속시키기 위해 끝을 결심한다. 헤어질 결심은 사실, 헤어지지 않을 결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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