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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승 Feb 02. 2022

말하는 사람보다 말하는 내용이 더 중요할까?

'가면토론회'로 보는 메신저 효과와 토론


최근 JTBC에서 출연자들이 가면을 쓰고 음성 변조를 한 상태로 3대 3 토론 배틀을 벌이는 방송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정치·사회 현안을 두고 보수, 진보 진영으로 나눠 익명의 패널이 논리로 토론을 벌인다는 포맷이다. 해당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따르면 “사회적 위치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말의 무게가 달라지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토론”에 임한다고 밝혔다.


여러 사건으로 결국 폐지되긴 했지만 신선한 토론 방식으로 토론에 대한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해당 방송이 정치적으로 이슈 몰이를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글에서는 되도록 정치적인 면을 배제하고 토론자의 관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가면토론회'의 주요 특징은 익명성을 보장하여 논리만으로 토론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익명성은 토론의 전개 양상과 이를 지켜보는 청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메신저 효과(Messenger Effect)’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메신저 효과란 전달하는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이를 전달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가 설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메신저>의 저자 ‘INFLUENCE AT WORK(영국)’의 CEO인 스티브 마틴과 행동 심리학자 조지프 마크스에 따르면 우리가 말하는 사람 자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비용 대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간의 합리적인 경향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나 늘어나면서 인간이 효율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말하는 내용’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영향력에 의존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메신저 효과도 부, 명성, 지위 등 상대적인 우월함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드 메신저와 친한 사람과 관계 등 유대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프트 메신저로 나눌 수 있다. 공적 토론에서는 자신의 전문성 등 상대적 우월함을 강조하는 하드 메신저가 더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형식을 갖춘 토론에서는 청중이나 상대방과 유대감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면을 쓰고 목소리를 변조한 채로 토론하는 것이 토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중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메신저 효과가 사전에 차단되기 때문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토론할 때나 토론을 볼 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말하는 내용이 아닌 말하는 사람의 지위, 소속, 유명세에 따라 결정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보다는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정치, 사회 이슈를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는 요즘 시대에 더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가면 쓰고 하는 토론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토론회는 여러 아쉬움을 낳는다. 하나는 프로그램 의도에 맞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면 더 흥미롭고 유익한 토론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명 정치인, 언론인 등이 아닌 전문가와 일반인 위주로 패널을 구성했다면 청중이 더 논리에 집중하는 토론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은 가면을 씌우고 목소리를 변조하더라도 특유의 말투를 통해 알아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익명의 패널이 논리로 토론을 벌인다는 포맷”을 고려하면 ‘가족 리스크’나 ‘대선 지지율 향방’과 같은 토론 주제 대신 다른 현안을 주제로 선정하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유명 정치인도 참여했기 때문에 논리보다는 당의 노선 안에서 발언해야 하는 등의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익명성에 기반한 토론을 진행하기 때문에 “논리나 내용”이 아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추론하는 것에 몰입하여 토론을 보게 될 수 있다. 그게 흥미를 유도하는 장치일 수는 있겠으나 토론의 본질을 오히려 흐릴 수 있다.


다른 아쉬움은 토론을 논리적, 지적 활동으로 보는 것을 넘어 종합적 활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토론은 청중을 ‘설득’하는 활동으로 논리 외에 감정, 권위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 이미 여러 토론회와 TV 토론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도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가면 쓰고 토론하는 것은 토론에 관심을 높이기 위한 이벤트로 활용하되, 집중해야 할 일은 논리와 공감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토론의 장을 더 많이 만들어주고, 이미 여러 매체에서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양한 사람에게 토론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 참조:  스티브 마틴, 조지프 마크스,《메신저》 (21세기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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