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규칙은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나 말의 핵심이 드러나지 않는 토론자
대선을 앞두고 열린 후보 간 4자 토론을, 정치적인 평가를 떠나서 토론의 기술적 측면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정치 평론가가 아닌 토론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낸 것으로, 후보자가 취한 태도나 전략이 토론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후보자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발언이나 태도임을 보여주는 평은 되도록 제외하려고 했다. 또한, 토론에 관심 없는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토론자의 전략 등 자칫 복잡할 수도 있는 분석은 제외하였다. (이에 대한 내용은 추후 여러 글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대선토론 분석 시리즈'의 첫 번째 편에서는 올해 2월 처음 열린 대선 후보 TV 토론을 살펴보고 각 후보자가 보여준 토론의 강점과 개선할 점을 살펴볼 것이다.
이재명 후보의 토론 분석에 이어 이번 편에서는 기호 2번 윤석열 후보 토론의 강점과 개선할 점을 살펴보자.
윤석열 후보, 이재명 후보 모두 법률가 출신이지만 서로 대비되는 토론 스타일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
1) 토론에서 좋은 태도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점
과거 당내 경선 토론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협력적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인 점이 좋았다. 대선후보 토론은 단순히 토론을 잘하는 사람을 가리는 게 아니라 후보자의 인품과 자질을 판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토론에서 윤후보는 안후보를 향해 “국민적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에 우리 안 후보님의 방향도 충분히 경청할만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토론을 부드럽게 끌어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호감도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토론은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청중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토론에서는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말하는 방식과 말하는 사람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
2)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한 점
제한 시간 내에 무수히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토론의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논지를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비유인데 윤후보는 안보 관련 토론에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예를 들어, 사드 추가 배치가 꼭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윤후보는 격투기 예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리가 격투기 싸움을 한다고 할 때 측면으로 옆구리도 치고, 다리도 치고, 복부도 치고, 또 머리도 공격하면 다 방어를 해야 되는 거기 때문에…”
이어서 고고도, 중고도, 저고도, 측면 공격 등 다양한 방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자신의 논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을 볼 수 있다.
3)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이용함
윤후보는 부동산 주제 토론에서 대장동 이슈를 끊임없이 던지며 토론을 이어나갔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구축하려는 점이 좋았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장동 위주 네거티브 전략은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 토론의 양상과 논의된 결과만 놓고 보자면 상대 후보에게 타격을 주는 전략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윤후보가 전략적으로 한 명만 집요하게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 자신이 원하는 프레임 안에서 토론을 끌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윤후보에게는 이러한 전략이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심도 있고 균형 잡힌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토론 형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후보의 토론을 다룬 후에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4)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한 점
이후보가 'RE100'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을 때 윤후보는 'RE100’이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의미임을 모른다고 인정하였다. 일부 사람들이 토론할 때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면서 그 상황을 잘 넘기는 것도 기술이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하면 토론자의 설득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다. 토론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장이 아니라 수많은 자료로 무장한 상대방이 내 논리의 허점과 결점을 찾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아예 모르는 것을 아는 척했다가 상대방이 후속 질문과 발언을 통해 이점을 지적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설득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토론자의 권위와 전문성이 타격을 입게 돼 승부를 봐야 할 중요한 쟁점에서 청중을 설득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관련 주제에 대해 잘 모른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고 토의하고 고민하면서 토론 준비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시험 중간에 필기 노트를 찾아보는 것이 안 되는 것처럼, 토론 중에는 이를 되돌릴 수 없다. 모르는 용어나 개념이 나왔다면 이를 확인하고, 단순 용어나 개념 이면에 있는 가치나 문제의 핵심을 찾아 토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1) 반론이나 질의에 대한 응답에서 말을 돌리는 경향이 있음
윤후보는 반론하거나 질문에 답변할 때 말을 빙빙 돌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토론에서 토론자마다 발언 시간이 정해져 있는 토론에서는 자신의 말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EU 택소노미 원자력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예정이십니까? 어떻게 원전 문제를 대응할 예정이십니까?"라는 이후보의 질문에
윤후보는 프랑스 수입 등 질문과는 다른 내용을 계속해서 말하는데, 상대방이 계속해서 관련 질문을 이어나가자 얼버무리다가 결국 'EU 택소노미'를 모른다고 인정한다. 관련 이슈를 몰라서 말을 돌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잘못된 대응이고(*좋은 점 4번 참조), 이렇게 말을 돌리는 것이 반론할 때도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2) 핵심이 명확하지 않고 말이 장황함
바로 위 내용과도 이어지는 특징으로 토론에서 자신의 논지를 펼 때 핵심이 명확하지 않고 말이 장황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예를 들어, 윤후보는 "취임 후 가장 먼저 손 볼 부동산 정책 1가지는?"이라는 사회자 공통 질문에 "대출받을 수 있게 하고, 임대차 3 법을 먼저 개정할 것이다."라고 자신의 정책을 제시한다. 자세히 보면 2개의 정책을 제시하고 있고 정확하게 윤후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같은 질문에 대한 타 후보들의 답변과 비교하면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또한,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무엇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윤후보의 답변을 보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은 중소기업을 지금까지는 너무 얇게 넓게 지원했는데 가급적이면 기술, 경쟁력이 있는 데 좀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그렇게 해서 키우는 방향이... 재원은 그런데 써야 한다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 공정한 거래 관행을 보장해서 중소기업이 좀 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전혀 구조화되지 않아 핵심이 드러나지 않고 여러 정보가 한데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구체성이 결여된 어휘나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청중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다. 제한시간 등 토론의 특성을 고려하여 두괄식으로, 구조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3) 문장의 끝을 맺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점
윤후보는 토론 중에 문장을 끝맺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말한 것에 최소한 끝맺음을 내주는 것이 필요한데 말을 흐리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이를테면, 토론 중에 "~때문에... (끝)"로 자신의 말을 맺는 경우가 그렇다.
기호 순서에 따라 이재명 후보에 이어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첫 번째 토론에서 보여준 토론의 강점과 개선할 점을 살펴보았다. 윤석열 후보의 발언을 분석하면 토론 규칙과 특정 이슈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토론을 끌고 감으로써 전략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토론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말의 두서가 없고 핵심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말하기와 관련된 영역이 아니라 각종 현안에 대해 생각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기호 3번 심상정 후보의 토론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