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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서동욱 지음, (김영사, 2025)

by 김경윤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은 자유와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복종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이다. 진정한 자유는 타자의 호소에 대한 귀 기울임, 즉 호소에 대한 복종에서부터 생각될 수 있다. 자유는 타자와의 만남이 없다면 숲속에 숨겨진 보물처럼 영원히 깨어날 줄을 모른다. 타자와의 만남만이 비로소 자유가 정체성을 얻게 해주는데, 그 정체성이란 바로 '심판받는 자유'이다. 타자의 호소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헌신한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또는 모른 척할 것인가? 이런 질문의 가능성이 바로 자유 자체이다. 그러므로 자유란 곧 '나는 타자와 연루되었다는 것',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자의 호소는 나에게 대답을 선택할 자유를 탄생시키지만, 어떤 대답을 선택하건 그 선택은 '대답에 대한 책임'을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 자유 속에서 대답을 선택했다는 것은 나는 그 대답에 책임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유는 '무거운 자유'이다. 그래도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자유를 원치 않더라도 타자의 말 걸어옴이 우리에게 대답하거나 대답하지 않을 자유를 선사한다.(45쪽)


1.

서동욱이 쓴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은 제목이 이끌려서 산 책이다. 사고 나서 참 잘 샀다고 생각했다. 서동욱의 문체는 화려면서도 섬세했고, 철학적이면서도 감성적이었다. 나는 그처럼 글을 쓰지 않지만, 나는 그의 문체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유의 풍성함을 높이 산다. 그런데 이번에 두 번째 책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가 나왔다. 이번 책은 표지 그림이 너무 좋아 선택했다. (물론 표지 그림이 안 좋아도 구입했을 것이다.) 가파도에 있다 보니 시원한 풍경화가 표지를 차지하면 왠지 마음이 들었다. 취향이 바뀐 건가?

책의 띠지에 써놓은 문장도 마음에 든다. "일상을 낯설게, 어두운 것은 빛나게", 최근에 나는 나에게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연습 중이다. 예를 들면 가파도는 나에게 낯선 것이었지만, 이제는 너무 친숙하여 낯섦을 상실하고 있다. 관광객에는 사건(event)이지만, 거주민에게는 일상(normal)인 풍경처럼 가파도는 이제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일상이 되면 경이감이 줄어든다. 경이감을 유지하려면 매번 이벤트를 재발견하든지, 아니면 일상을 리추얼(ritual)로 바꾸어야 한다. 일상적인 기도가 리추얼인 것처럼.


2.

주변의 소중한 사람, 가치, 물건이 일상화됨으로써 그 가지가 떨어지는 현상은 현대인에게 불행이다. 이 불행은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경이의 시선을 상실하고 있으니까. 나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아니라 누려야 할 권리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번의 내란과 탄핵,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새삼 느낀다. '자유'를 밥 먹듯이 외쳤던 윤석열은 자유를 잃고 지금 감옥에 있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지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파렴치한 인간. 그는 자유인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이다. 그리고 우리도 '자유'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가 내란 사태를 겪으며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지키기 힘든 것인지를 몸으로 깨달았다. '자유'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며, 둘 중 하나가 사라지만 나 자신의 자유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3.

맨처음에 인용한 서동욱의 글은 <자유는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나온다. 책의 초반부다. 그는 자유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영화 <300>, 헤로도토스의 <역사>,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김수영의 시, 엘뤼아르의 시, 하이데거, 사르트르의 철학저서, 키르케고르의 불안의 정서, 레비나스의 <전채성과 무한>,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 한용운의 <복종>을 인용하거나 설명하면서 글을 직조해 나간다. 참으로 놀라운 촉수력이다. 나는 이번 책의 글들을 간식을 먹듯이 야금야금 읽고 있다. 그래도 되는 책이다. 한 꼭지 한 꼭지 독립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어디서부터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논문이 아니라 철학 에세이니까. 저자의 약속대로 그의 글을 일상을 낯설게 하면서, 익숙한 것들에 대한 다시 숙고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이고 섬세한 문체는 그 무거운 문제를 조금은 편하고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멋진 장치이다. 보통은 책을 다 쓰고 후기를 쓰는데,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게 만든다. 다시 말해, 참 좋은 책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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