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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May 28. 2023

할머니, 할아버지께

교과서 113쪽에 쓴 아이들의 편지

어버이날 국어 시간, 배움 주제는 ‘마음을 전하는 편지 쓰기’였다. 교과서에는 ‘알맞은 낱말을 사용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써 봅시다’라는 학습 문제가 제시되어 있었다. 어버이날 전 주 아이들은 창체 시간에 카네이션 바구니 만들기를 하면서 엄마, 아빠께 작은 카드를 썼었다. 편지글의 형식을 갖추어 제대로 다시 한번 편지를 쓰게 할까 하다가 대상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부모님 말고도 고마운 분들이 또 있었으니.  

   

“얘들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 편지를 써 보자.”

편지 쓰는 방법을 정식으로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실물화상기에 교과서를 올려놓고 하나씩 써가며 설명했다.

“첫 번째 줄에는 편지를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쓰세요.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렇게요.”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 ‘할머니께’라고만 써도 돼요?”

“그러면 할아버지가 섭섭해하지 않으실까?”

아이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으셨어요. 치매 걸리셨거든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나는 그만 당황해 “그러시구나. 그럼 그렇게 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편지에 전하고 싶은 말을 쓰기에 앞서 먼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번 부모님께 카드를 쓰라고 했더니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저를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등 AI처럼 형식적으로 쓴 아이들이 많았다.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닿기 위해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뭐 했을 때 행복했니?”

“어떻게 해주실 때 감사했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하고 싶은 게 뭐니?”


아이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것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우리반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 손자, 손녀들인지 새삼 느끼게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실컷 말하고 나서야 조그마한 손으로 교과서의 빈 페이지를 한 줄 한 줄 채워갔다.


‘할머니. 탄천에서 같이 자전거 탈 때 진짜 재밌었어요. 자전거 잘 타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랑 목욕탕 갔을 때 너무 좋았어요. 그때 오렌지 맛 슬러시 사주셔서 고맙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호수공원 가서 김밥 먹었던 날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가요.’

‘저는 할머니가 해주시는 동그랑땡이랑 미역국이 제일 맛있었어요. 최고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예쁜 사진 많이 찍고 싶어요. 우리 인생네컷 찍어요.’


교과서 113쪽에 쓴 아이들의 편지를 그대로 뜯어 색도화지에 붙이고 예쁘게 꾸미게 했다. 그날 알림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 주소 알아 오기’를 적어주었다. 며칠 뒤 우리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우체국에 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편지를 부쳤다. 봉투 안에는 아이들이 쓴 편지뿐만 아니라 내가 쓴 편지도 함께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1반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000입니다.

며칠 전 국어 시간에 ‘마음을 전하는 편지 쓰기’ 수업을 하였는데요.

그때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쓴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저에게도 넘치는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었어요.

마흔이 넘은 지금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받은 사랑과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그 사랑과 지지는 언제나 제 마음속에 큰 부분을 차지하며 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항상 아이들을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시고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세요. 건강하세요.      


이제는 흰 머리가 셀 수 없이 많아져 염색을 꼬박꼬박해야 할 만큼 나이를 먹었는데도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립다. 나를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자랑하시고, 나를 몰래 불러 마을에 하나뿐인 슈퍼 경남상회에 가서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껏 고르게 하셨던 할아버지. 내가 잠이 들 때까지 부채질을 해주셔서 가장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주시고, 밤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섭다고 하니 오래된 요강을 꺼내 방 한구석에 놓아주셨던 할머니.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책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어쩌면 그저 사랑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한 사람에게 필요한 전부일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으면 성숙하고 안정된 삶을 살 줄 알았건만 매일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나아질 거야’를 읊조리게 되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께 받았던 사랑 때문인 것 같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과는 또 다르게 무조건적으로 넘치게 주셨던 사랑. 그 사랑에 감사하다고 진심을 담아 표현하지 못했던 게 아쉽고 후회스럽다. 내가 우리반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께 편지를 썼던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께 편지 쓰는 걸 망설이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기억을 잃으셨어도, 혹은 아주 먼 곳에 가셨어도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면 다 전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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