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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Sep 19. 2023

캠핑과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리, 살림 분야가 늘 어렵고 귀찮은 나에게 캠핑은 버거운 일. 그런 내가 “우리 캠핑 갈래?”라고 말하니 아이와 남편은 눈이 댕그래졌다. 웬일이냐고.      


여긴 가고 싶었다. 숲속에 있는 카라반인데 그냥 카라반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제인 오스틴, 헤밍웨이 등 작가의 컨셉으로 꾸며놓은 곳. 문학과 캠핑의 만남이라니.   

   

내가 예약한 곳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카라반. 입구에는 일본어로 적힌 명패가 달려있고, 짙은 녹색의 카라반 문 앞에는 풍등이 걸려있다. 카라반 내부에는 일본풍의 서랍장과 화병, 하루키의 소설책이 놓여있고, 카라반 옆 오두막에는 LP 플레이어도 있다. 하루키는 수 만 장의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는 소문난 음악 애호가다.


주인장 말로는 소품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르며 작가의 특색, 취향 등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예쁘고 감성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구현되는 공간. 이렇게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장소에 나는 어김없이 끌리고 만다. 그것이 책과 관련된 것이면 더더욱.


그러고 보니 5년 전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지지향’에서  ‘박완서의 방’에 묵기도 했었다. 작가의 젊었을 적 사진과 오래전 출판된 작가의 책이 가득 꽂혀있던 방에서 <나목>을 다시 읽었었다.       


캠핑에 다녀온 후 <노르웨이의 숲>을 오랜만에 꺼내 인덱스를 붙여놓았던 부분을 다시 펼쳐 읽었다. 도서관에서는 하루키의 음악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빌려와 그가 소개한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놓기도 하고.       


사실 캠핑 갔던 날 날씨가 너무 더워 우리는 고기 구워 먹을 때를 빼고는 줄곧 에어컨이 나오는 카라반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핸드폰으로 야구 중계를 봤고, 남편은 태블릿 PC로 업무를 좀 보다 이내 잠이 들었다. 나는 침대 맞은 편 길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일기를 끄적였다.      

카라반은 우리집 작은방보다도 작았다. 비싼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으나 그래도 모처럼 아이와 남편을 눈에 많이 담았던 시간.      


잠이 들 때쯤에는 톡톡톡 카라반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봄날의 곰만큼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는 여름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만큼 이 둘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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