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추위에 힘겨워하던 길고양이 봉순이가 이뤄낸 작은 기적
봉순이는 우리 집 막내 고양이다. 봉순이는 한가할 때면 정말 세상없이 잘 잔다. 원래 고양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데 보낸다. 그러나 고양이마다 특성이 다 있는지, 막내 봉순이는 꿀잠을 즐긴다. 길에서 보낸 험한 시간 동안 제대로 청하지 못한 잠을 다 ‘몰아서’ 자기라도 하듯이.
봉순이는 한동안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의 시간을 길에서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걸로 봐선 우리 집에 오기 전 수 년을 길에서 보냈던 것 같다.
봉순이를 처음 봤을 때, 하루를 버티기에도 버거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봉순이는 원래 아내가 돌보던 길고양이였다. 아내를 통해 2022년 끝자락에 처음 만났었는데, 마침 그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 추운 날씨에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못내 안스러웠다.
해자 바뀌자 아내는 이 녀석을 포획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료해보니 신부전 3기 진단을 받았다. 신부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 질병인데, 3기에 접어들었다면 위염·구내염·구토·설사 등 여러 질환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그때 봉순이는 정말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아내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평안하게 살아가도록 해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단다. 그때 아내는 무척 마음아파했었고, 나 역시 그 마음을 알기에 봉순이를 기꺼이 가족으로 맞이했다.
그런데, 꼭 하나 분명히 해두고 싶다. 단지 봉순이가 가엾어 보여서 가족으로 맞이한 게 아님을 말이다. 비록 병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볼 때 마다 정이 갔다. 그래서 언젠가는 가족이 될꺼라 여겼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2월 9일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아내는 봉순이를 맞이한 날부터 지금까지 처방사료와 약을 먹인다. 처음에 봉순이 약 먹일 때, 거칠게 저항해서 나와 아내가 무척이나 고생했다. 게다가 봉순이 입에서 악취가 심하게 났었는데, 고양이가 쉽게 걸리는 질병인 구내염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몸 상태를 끌어 올린다음, 병원에 데리고가서 치아 수술도 시켰다.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나더니 봉순이는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떨어진 신장기능을 회복시킬 수는 없고 그래서 건강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현재 봉순이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아니다.
난 봉순이를 가족으로 맞았을 때, 한 2주 정도 있다가 떠날 줄 알았다. 그래서 비록 그다지 신앙심이 깊지는 않지만 처음 온 날부터 한 달 넘게 매일 봉순이 붙잡고 '봉순이를 사랑하는 하느님, 우리가 가족으로 있는 동안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게 해주세요'하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법 살도 쪘고, 털도 부드러워졌다. 처음에 기도해주려고 쓰다듬으면 아무런 저항도 못했던 녀석이 지금은 가까이 가면 기겁을 하고 줄행랑을 친다. 그래서 봉순이를 볼 때 마다 묻는다. '너 그때 그 봉순이 맞니?' 하고.
보살핌이 실종된 사회
'돌봄' 혹은 '보살핌'은 이렇게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둘째 애옹이,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막내 봉순이는 처음 가족으로 맞이했을 때만 해도 며칠 못 살 것 같아 보였는데 말이다.
이게 비단 고양이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일일까? 우리 사회는 약한 자를 보살피는 데 인색해 진 것 같다. 누구보다도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특히 그렇다. 참사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울부짖는 일은 슬프지만 익숙한 광경이 되어 버렸다.
보살핌이 단지 슬픔 당한 이들에게 동정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할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는 게 진정한 보살핌일 텐데, 이런 미덕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다. 특히 대통령 등 이른바 '리더'들이 상처 입은 국민들을 도무지 보살필 줄 모르는 것 같아 화가 난다.
1년간 가족으로 지내면서 봉순이는 보살핌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줬다. 그래서 봉순이가 잠 자는 모습 볼 때마다 고맙고 대견스럽다.
봉순아,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맙다. 1년 동안 참 행복했단다. 앞으로도 건강 잘 챙기고, 늘 한결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