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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아빠 Sep 20. 2024

[리뷰] 레바논 ‘삐삐 폭발’, 그리고 영화 ‘뮌헨'

이스라엘 강경일변도 정보전이 부른 악순환, 여전히 진행형

레바논에서 삐삐 폭발사고가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국제여론은 이스라엘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했고, 이스라엘도 애써 부인하지 않는 기색이다. Ⓒ 사진 출처 = CNN

레바논에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속칭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가 동시다발로 터진 것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자 CNN·로이터 등 국제언론들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했다. 이스라엘은 애써 부인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 삐삐 폭발 사건의 배후로 모사드가 입길에 오르는 건, 모사드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삐삐·휴대전화 등 무선 통신기기가 등장하기 전 모사드는 전화에 폭탄을 '심는' 방법으로 목표를 '제거'했다. 


모사드 암살조는 '키돈'팀으로 불리는데, 이들의 활약상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5년작 <뮌헨>이 잘 묘사했다. 


잠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영화의 메시지가 이번 사건과 맞닿아 있어서다. 이 영화는 모사드 요원 아브너 카프만(에릭 바나)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겪는 내면적 갈등을 그린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에 아픈 상처를 남긴 대회다.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은 선수촌에 난입, 이스라엘 선수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였다. 그리고 인질극은 참담한 비극으로 끝났다.


이러자 골다 메이어 총리는 복수극을 다짐한다. 군 당국과 모사드는 아브너를 선택한다. 임무를 받은 아브너는 팀을 꾸이고 임무수행에 나선다. 그리고 용의자 11명 중 6명을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팀원 셋이 목숨을 잃는다. 아브너 자신도 타겟이 됐음을 알고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이 영화는, 앞서 적었듯 '키돈'으로 불리는 모사드 암살조가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는지 잘 보여준다. 전화기에 폭탄을 설치해 ‘목표’를 제거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동시에 현장 요원이 겪을 정신적 혼란도 섬세하게 그린다.


무엇보다 아브너는 용의자를 ‘제거’했지만 오히려 더 과격한 자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나선데 회의를 느낀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모사드 측은 “심적 갈등을 겪는 요원은 없다”고 일축했다)


스필버그, 20년 뒤 미래 정확히 내다봤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은 모사드 요원 에브너의 심적 갈등을 그린다. Ⓒ CJ 엔터테인먼트

19년이 지난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스필버그는 미래를 예언한 듯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 시점 이후 줄곧 강경일변도로 맞섰다. 오슬로 협정은 정말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암살과 정보전에만 의존한 게 갈등을 부채질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고도의 정보전을 벌였음에도 아랍 테러조직은 곧 더 강경한 자들이 빈자리를 채웠고, 이건 이스라엘의 강경화를 부추겼다. 


레바논에서 벌어진 삐삐 폭발사건 역시 이스라엘이 추구한 강경일변도 정책의 또 다른 줄기다. 


사실 삐삐 폭발사건이 벌어지면서 국제언론은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했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삐삐 제조공장 위치와 조립 일정 등을 사전에 알고 있었어야 하고, 생산라인에 침투할 인력을 확보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 진상과 별개로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을 통해 상시 갈등상태에 있는 팔레스타인은 물론 적대적인 무장정파 헤즈볼라, 그리고 헤즈볼라를 배후 지원하는 이란에 공포를 심어주는 데 일정 수준 성공했다. 


한창 대선 국면인 미국, 특히 민주당 카밀라 해리스로선 상황관리가 더욱 복잡해졌으니 이스라엘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간과한 게 있다. 이번 삐삐 폭발사건으로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고, 따라서 이스라엘로서는 테러 혐의를 받을 수밖엔 없게 됐다. 더구나 민간인 피해를 빌미로 헤즈볼라 등 적대적 무장정파는 새로운 인적 자원을 충원할 명분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로서도 보복 테러를 염려해야 한다. 


이런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중동을 지배하는 갈등과 혼돈의 유령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레바논 삐삐 폭발사건이 던지는 진정한 함의다. 


#모사드 #뮌헨 #스필버그 #레바논 #삐삐폭발사건 #헤즈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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