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키 아빠 Sep 01. 2024

“땅은 사람을 미치게 해요” 지면사, 욕망을 노린다

리뷰] 부동산 사기단 ‘지면사’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도쿄 사기꾼들’

넷플릭스 7부작 ‘도쿄 사기꾼들’(일본어 원제 ‘地面師たち’)는 부동산 사기꾼 ‘지면사’가 벌이는 사기극을 사뭇 흥미진진하게 그리는 수작이다. Ⓒ 넷플릭스

일본은 1980년대 거품경제를 겪으면서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다. 특히 부동산 부문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다 도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며 '잠시나마' 부동산 경기가 활력을 얻는가 했다. 

바로 이 시기 지면사(일본어 발음 ‘지멘샤’, 地面師)라고 불리는 부동산 사기꾼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7부작 <도쿄 사기꾼들>(일본어 원제 ‘地面師たち’)는 이들이 벌이는 사기극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지면사는 고도의 부동산 관련 법률지식과 정보를 갖춘 집단이다. 부동산을 팔고 싶어 하는 토지주를 연기하기 위해 '배우'를 섭외하는가 하면, 신분증과 인감 위조기술까지 갖췄다. 


이들의 수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행동대원 다케시다가 정보를 수집해 오면, 리더 해리슨 야마나가(도요카와 에츠시)가 선별해 사기극을 기획한다. 이제 판이 짜여지면 고토(피에르 타기)와 츠지모토 타쿠미(아야노 고)가 행동대원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 레이코(코이케 에이코)는 토지주를 연기할 배우 섭외에 나선다. 


이들은 적절히 협력하며 상대를 속인다. 치밀하기로 말하자면 일본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토지주가 본인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무척 꼼꼼하다. 그런데도 지면사들은 이런 확인절차를 능수능란하게 피해간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자들 앞에 시스템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한편 드라마가 그리는 부동산 거래 관행은 우리나라와 닮은꼴이다. 땅을 팔고 싶어하는 토지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말끝마다 '죄송합니다'(済みません)를 연발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 


해리슨 야마나가란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해리슨이 사기극을 벌이는 목적은 돈이 아니다. 그보다 표적을 유인해 숨통(?)을 끊는데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누구라도 자신의 목적달성을 방해하면 가차없다. 해리슨역의 도요카와 에츠시의 연기는 ‘다이하드’ 1편에서 악당 한스 그루버로 분한 고 알란 리크만의 연기와 묘하게 겹친다. (극중에서도 해리슨은 한스 그루버 이야기를 한다)


츠지모토 타쿠미는 보다 복잡한 캐릭터다. 그는 부동산 사기로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해리슨은 그를 눈여겨보고 ‘지면사’로 키우기로 한다. 타쿠미는 해리슨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명철한 지면사로 변신해 나간다. 


배우 아야노 고가 츠지모토 타쿠미를 연기하는데,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다가 지면사로 변신하는 타쿠미 역을 잘 표현한다. 


대게 범죄물은 권선징악으로 결말을 맺기 마련이다. 반면 이 드라마 <도쿄 사기꾼들>은 오히려 지면사의 활약상(?)을 미화하는 면이 없지 않다. 


냉혹하면서 지적인 악당 해리슨, 인간의 욕망 갈파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해리슨의 입을 통해 토지소유욕이 부질없음을 고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해리슨은 과업을 마친 츠지모토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해리슨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백미일 것이다. 


넷플릭스 7부작 ‘도쿄 사기꾼들’ 주인공 해리슨 야마나가는 인간의 토지소유욕망이 부질없음을 갈파한다. Ⓒ 넷플릭스


"모든 땅은 태고 적부터 거기 존재했을 뿐입니다. 야생동물은 영역에 대한 인식은 있을지 몰라도 땅에 대한 소유욕은 없죠. (중략) 땅을 소유한다는 집착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땅은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닌데, 인간의 머리 속에서 토지 소유란 개념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전쟁과 살육을 계속해 온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류의 역사는 토지쟁탈의 역사입니다. 땅은 사람을 미치게 해요."


해리슨은 인간의 토지소유욕망을 제대로 간파한 듯하다. 그가 사기극을 벌이는 궁극의 목적은 이런 욕망을 건드리면서 사람을 농락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만끽(?)하기 위함으로 보여진다. 


다른 한편으로, 해리슨이란 캐릭터는 인간이 토지소유욕을 버리지 않는 한 지구상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 욕망을 건드리는 사기극이 벌어질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저출생·고령화 사회 일본의 단면을 생생히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가치 있다. 먼저 고령화부터 살펴보자. 지면사들은 주로 고령에다 노환으로 인지능력을 상실한, 그래서 재산권 행사가 취약한 노인들이 소유한 땅을 노린다. 


독거노인 소유 부동산, 그리고 현금은 범죄자들의 집중 표적이다. (일본은 한동안 제로 금리였고, 그래서 노인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기 보다 집에 두기 일쑤다)


저출생은 또 다른 단면이다. 극엔 혼혈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면사를 쫓는 도쿄 경시청 신참내기 쿠라모치 순경이다. 쿠라모치는 참신한 감각으로 지면사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그의 외모는 무척 이국적이다. 쿠라모치 역을 맡은 배우는 이케다 이자벨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필리핀계 혼혈이다.


여기서 혼혈이랑 저출생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일본은 수 십년간 저출생을 겪어 왔다. 


일본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공백을 외국인 이민자나 결혼 이주여성이 채우는 실정이다. 향후 일본이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란 전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 드라마 <도쿄 사기꾼들>은 다문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됐음을 보여준다. 


결론이다. <도쿄 사기꾼들>은 토지소유욕을 제대로 건드리는 한편, 일본 사회 현 풍속도를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평한다. 아직 못 보셨다면 꼭 보시기를 권한다.




작가의 이전글 천혜의 자연 훗카이도, 그곳에서 현대 ‘일본’을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