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 ‘그늘’ 짙게 드리운 일본의 현재, 한국의 가까운 미래다
일본 최북단 훗카이도는 전형적인 휴양지다. 한국의 제주도, 그리고 차밭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을 합친 느낌이라면 적절한 표현일까?
가장 먼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은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우유·치즈·요구르트 등 훗카이도 산 낙농제품 품질은 정말 일품이다. 감자·옥수수 등 농산물 맛도 좋다.
자연환경은 비록 미국의 그랜드캐년이나 스위스의 알프스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푸근한 느낌을 준다. 특히 훗카이도섬 정중앙에 있는 비에이(美瑛)의 자연환경은 흡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에니메이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훗카이도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문득 겨울의 훗카이도가 보고 싶어졌다. 눈 내린 훗카이도의 풍경은 사진만 봐도 매혹적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는 겨울의 훗카이도를 배경으로 했는데, 눈 덮인 훗카이도 풍경이 아련함을 더한다.
앞서 적었듯 웅장한 맛(?)은 덜하고, 도쿄 같은 대도시의 북적임은 적었지만 훗카이도를 알게 되어 좋았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이곳 관광산업의 주수입원이 한국 관광객이라는 점이다. 훗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札幌)를 비롯해 관광명소 어느 곳을 가도 한글 간판이 눈에 띤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직원들도 꽤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일본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98년 여름 배낭여행으로 왔고, 그 다음해인 1999년엔 자매학교 방문차 다시 일본을 찾았다.
당시는 거품경제가 꺼지고 일본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거품경제가 꺼졌다고 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부유했다. 전세계 부동산은 거의 일본인이 차지하다시피 했고, 외국 여행을 가면 일본인 단체관광객은 늘 눈에 띠었다. 그리고 정치권은 불황극복을 자신했다.
단기 방문객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엔화 환율. 당시만 해도 일본 엔화 환율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고, 일본 물가는 너무 비쌌다. 그래서 도쿄 시내를 다니면서 편의점에서 빵과 음료수 사먹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20년 후 찾은 일본, 그야말로 격세지감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모습은 그때와 너무 달라졌다.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로 활력을 잃었다는 징후가 너무 역력하다.
어디서 이런 징후를 볼 수 있냐고 물을 수 있겠다. 입국하면서, 그리고 거리를 보면서 유심히 살펴보라. 공항 안내 직원이나 행사도우미, 주차관리 요원, 관광버스 운전 등 한국 같으면 젊은이나 중장년층이 할 일들을 일본에선 백발이 정정한 노인들이 한다.
그리고 넘사벽 같았던 엔화는 이제 연일 저점을 찍는 중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그리고 고 아베 총리 집권 시절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엔화 발행을 남발한 탓이다.(이를 경제학 용어로 양적완화라고 한다)
그래서 이젠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고급 식당에서 게요리를 맛보고 고급 호텔에서 숙박을 하는 시절이 됐다. 학생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훗카이도가 시골이어서 그럴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가이드는 일본 전반이 그렇다고 알려준다.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세습정치의 만연은 노쇠화된 일본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최근 총리직 연임을 포기했다. 뇌물 스캔들, 그리고 통일교와의 유착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데 따른 여론악화로 낙마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통해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郎).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아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후임인 고 아베 신조 총리도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자,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재직 당시 외상(한국으로 치면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다. 이렇게 세습 정치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총리직을 '대물림'하는 게 현재 일본 정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일본에선 정계에 발을 들이려면 '3반'을 갖춰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지역기반과 간판(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가방(고등교육)을 갖추면 자질이 다소 떨어져도 쉽게 정치입문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극우주의를 부채질한 아베가 전후 최장수 총리를 지낼 수 있었던 이유도 실은 정치명문가 출신이어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저출생·고령화가 만연하고 세습정치가 횡행하는 일본은 한국의 가까운 미래라는 점이다.
통계청은 이미 지난해 9월 오는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역사회는 이미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비록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치신인의 진입 장벽이 높은 건 부인하기 어렵다. 역으로 나름의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지만, 서로가 협력을 모색하기엔 현재 일본 정치상황이 혼란스럽다. 게다가 한국 윤석열 정부는 아예 조선총독(?)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미국은 이런 일본을 일으켜 세워 동북아 동맹체제 구축을 꿈꾼다. 미국 대선 국면이 변수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카밀라 해리스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이 꿈꾸는 동북아 동맹체제 구축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참으로 우스우면서 슬픈 광경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건 분명하다. 다만, 한·일 양국이 안고 있는 내부 정치상황으로 인해 정부 수준에서 고차원적인 협력이 미진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