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자서전이 그리는 현대 미국, 트럼프에 열광하는 백인 이해돼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가 J. D. 벤스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면서 그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원제 : Hillbilly Elegy)가 새삼 재조명 받고 있다.
J.D. 벤스는 2016년 쓴 자신의 자서전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힐빌리의 노래>는 출판뿐만 아니라 2020년 론 하워드 감독의 연출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선 가브리엘 바소가 J.D.를 연기하고 에이미 애덤스, 글렌 클로즈 등 대배우가 출연한다.
특히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던 에이미 애덤스는 패배의식에 쩌들다 급기야 마약에 손대는 J.D의 어머니 베벌리로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선보인다. 글렌 클로즈의 연기 역시 진한 감동을 준다.
영화와 자서전 모두 오하이오주 미들타운 출신 벤스가 명문 예일대 법대에 진학해서 성공을 거둔다는 내용이다. 얼핏 '진부한' 아메리칸 드림을 주제로 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반대다.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은 쇠락한 철강도시다. 한때 철강은 미국의 번영을 이끈 핵심산업이었고, 철강노동자들은 안정적인 고용과 부를 동시에 누렸다. 그러나 지금 미국 철강 산업은 경쟁력을 잃었고, 철강노동자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J.D. 벤스는 몰락한 철강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았다. 예일대 법대를 나와 실리콘밸리에서 사업가로 성공했고, 이제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러닝메이트 지명을 받았으니 말이다. 이미 벌써부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적었듯, J.D.는 예외적인 사례다. 한때 미국 산업을 이끌었지만, 현재는 몰락한 러스트벨트 지대엔 제2, 제3의 J.D.가 차고 넘친다. 빈곤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노력' 해도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가 그랬다.
영화나 자서전에서 J.D.는 어머니 베벌리를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린다. 그도그럴것이, 베벌리도 고등학교 때까지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더 치고 올라가지 못했다. 학비가 없어서다. 베벌리는 어린 아들 앞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어"
백인 노동계급에게 민주당은 ‘기득권 정당’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세계 1위의 산업경쟁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유럽·일본의 산업경쟁력이 올라오면서 미국의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멕시코·중국 등 값싼 노동력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계화 바람을 타고 일자리 외주화는 경제모델로 정착한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경제에선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IT산업과 금융업으로 미국은 경제 체질을 개선했다. 그러나 이들 산업은 일자리 파급력이 크지 않다. 경영진과 개발자는 소수의 고학력자면 충분했다. 나머지 ‘사람 손'이 가는 일은 중국이나 제3세계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런 시절에 미국에서 백인 노동계급에서 태어난다는 건 효율성만 추구하는 IT 자본주의 경쟁세계에 무방비로 내던져졌다는 의미 말고는 없다. 러스트벨트의 몰락한 백인 노동층의 처지를 감안해 보면 J.D. 벤스의 존재는 예외적일 수밖엔 없다.
자서전이나 영화나 모두 J.D. 벤스 스스로 자신의 성공이 우연에 힘입은 결과임을 인정한다. 세계화된 경제에 대한 문제의식 보다 자신의 ‘노력’을 부각한 점은 불편하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러스트벨트의 백인들은 경제 세계화 와중에 점점 급진화됐다. 이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그런 트럼프가 J.D.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 민주당의 현주소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서 적었듯 현대 미국 경제는 IT·금융업 기반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들은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진보정치 플랫폼으로서 '민주당'의 역할은 상당히 희석됐다. 무엇보다 몰락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민주당은 그저 기득권 정당일 뿐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미국만의 일일까? '힐빌리의 애가'는 한국에서도 곧 울려 퍼지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