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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아빠 Jun 08. 2024

[시론] 천지창조는 과학으로 입증 가능한 가설이 아니다

‘창조과학 폄하’ 이유 교수 해임, 21세기 ‘웃픈’ 코미디 

블랙홀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타당한 가설이라고 과학은 설명한다. 하지만 블랙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났는지 과학은 입증하지 못했다. Ⓒ SciTechDaily

때 아닌 창조과학 논쟁이 한국 신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계열인 서울신학대학교가 지난 4일 교양교육원 소속 박영식 교수에 대해 해임결정을 한 게 발단이다. 


서울신대가 해임결정을 내린 이유는 박 교수가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폄하했다는 것이다. 정말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일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창조과학 논쟁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7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바탕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은 박 후보자의 종교편향 정도에 그쳤다. 이번엔 그 무게감이 다르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창조과학의 속살을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창조과학은 성서가 기록한 ‘창조론’을 과학으로 입증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정교회·가톨릭·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온 천하만물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이 같은 믿음의 근거는 구약성서 창세기다. 한 마디로 창조과학은 과학으로 이 믿음을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창조과학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개신교 근본주의 시각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창조'와 '과학'은 양립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오'다. 이렇게 단정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창조와 과학은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기록은 과학논문이 아니다 


창조론은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세계관이다. 반면 과학은 사실과 추론이 지배하는 세계다. 근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물자체'(Ding an sich) 는 알 수 없다"고 정의하면서 구약성서의 창조론은 실증적 사고영역에서 분리됐다. 그리스 신화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여기서 칸트가 창조론이나 신화의 세계를 실증적 사고 영역에서 분리했다는 게, 근대 이전의 세계관을 부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 근대 이전 세계관은 그대로 존중하면서 과학은 그 고유의 영역, 즉 사실과 추론을 통한 실증적 사고체계를 구축해 나갔다는 말이다. 


'블랙홀'을 예로 들어보자. 천문과학은 블랙홀의 존재를 밝혀냈다. 블랙홀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타당한 가설이라고 과학은 설명한다. 


하지만 블랙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났는지 과학은 입증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조물주'가 만들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참 편한 결론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왜냐고? 그만큼 오묘한 세계여서다. 


이렇게 과학과 창조론은 인간 사고의 영역을 풍부하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인에겐 하느님의 창조섭리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한다. 


하지만 과학과 창조론을 혼합해 창조과학이라고 하는 건 아무리 좋게 말해도 코미디다. 구약성서 창세기가 묘사한 천지창조가 사실과 추론으로 입증 가능한 가설이 아닌데도 말이다. 해임결정을 통보 받은 박영식 교수도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보고서나 논문이 아니다"고 못 박았었다. 


그런데, 미래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가 창조과학을 깎아 내렸다는 이유로 교수의 교직을 박탈하는 건 우스우면서 슬픈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신학교 혹은 개신교 계열 종합대학이 자구력을 잃어가는 징후가 역력했다. ‘기독교정신’을 내세운 한동대가 김대옥 교수 재임용을 지속적으로 거부해온 게 대표적이다. 이번 서울신대의 박영식 교수 해임 결정 역시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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