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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이 Jul 07. 2022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의 자격 조건

어느 자리에서든 남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소개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신인류를 보는 것처럼 신기해하거나 아니면 의심의 눈초리로 아래위를 훑거나. 전자의 반응은 다시 세분화되어 "아니 이렇게 훌륭한 남자가 있었다고?"식의 칭찬이나 "어쩌다가 페미니즘을 알게 됐어?"식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후자의 반응도 나뉜다.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또는 "남자가 무슨 페미니즘을 얘기해?". 세분화된 4가지의 반응들 중에 나의 흥미를 가장 끄는 건 페미니즘의 자격을 묻는 마지막 질문이다.


페미니즘은 뭘까?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고, 국어사전에도 나온다. 수많은 정의들 중에서 페미니즘을 알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단어가 있다면, '성별 다름'과 '차별'일 거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성별 다름에 따른 차이를 근거로 차별하고 억압하는 구조와 체계를 종식시키려는 운동 또는 사상"이다. 이 정의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겠지. 


대부분의 남성(나를 포함한) 페미니스트는 자기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명명하기 주저한다. 나는 대학교 재학 당시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페미니즘을 알게 됐다. 이어서 여러 책들을 연달아 읽으며 세상이 깨지는 기분을 체험했다. 그리고는 어느 자리에 가서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생기면 나 자신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매번 스스로에게 페미니스트로 소개해도 되는지에 대한 자격을 물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넌 아직 부족해"였다.


한남(한국 남자)으로 태어나서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를 일상화하는 환경에 살았고, 그걸 몸으로 체화하여 지금도 실행하는 이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감히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성역이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귀를 열고 주변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 잘못은 커진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이불을 팡팡 차게 된다. 공부할수록 내가 싫어지는 경험. 그걸 겪어본 사람이라면  "나는 페미니스트예요"라는 말은 금기어처럼 목구멍에서만 맴돌게 된다.



얼마 전 한 대학교 교양수업 학생들의 남성 페미니스트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들 중 한 명이 질문했다.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소개하거나 '커밍아웃'하기에 어려워하는 남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하기 어렵다면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물론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소개하고 주위에서 동료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즐겁지만, 본인이 가진 걱정과 두려움이 더 크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신 중요한 건 일상에서 성차별과 여성 혐오와 맞서 싸우는 실천을 하는 것이라고. 질문을 던졌던 학생이 끄덕끄덕 했다.


페미니스트에 자격이 있을까? 정확히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에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을까? 나는 호명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페미니스트로 부르는 것보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살기만 하면 누가 뭐라 하든 페미니스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강조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중에 에토스가 갑이라고 한 것처럼. 페미니스트라는 이름보다 페미니즘 실천과 공부에 더 집중하는 삶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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