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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이 Aug 22. 2022

남성성과 불화하는 남자들

관계의 만족은 대화에서부터

올해 초부터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에서 학술연구팀 이끔이를 맡아 청년 센터의 지원을 받으며 수행 중인 연구가 있다. 연구명은 '남성 섹슈얼리티 현실 말하기'. 공동연구를 하는 동료와 술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100% 친구가 없다고 말할까? 술과 밤이 있다면 절대 친구는 없다는 말이 진짜일까?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면 친구로 지낼 수 없는 걸까? 친구와 연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독점적 관계가 그 차이라면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는 경우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의 끝에 우리는 남성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남성은 늑대, 여성은 여우'같은 전통적이고 헤게모니적인 이분법에 기반한 남성성이 원인이 아닐까 추측하며, 본격 연구로 발전시켜 보자고 결심했다.


우리는 또래 남성이 친구와 연인 관계에서 어떤 즐거움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각각의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지도 궁금했다. 왜냐하면 남성성은 관계 안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등장할 확률이 특히 더 높기 때문이다. 친구와 연인 관계에 더해 또 하나의 연구 범주를 성관계(sex)로 설정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남성성에 기반한다면, 모든 남성은 언제나 섹스를 갈구해야 한다.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거절하거나 외면해서는 남자답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남성 집단은 당연하게도 여러 개인들이 모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지배적 남성성에 쉽게 동화되거나 순응할 수 없다. 그래서 연구 목적을 '친구, 연인 등 성애적 관계에서 지배적 남성성과 불일치하는 경험을 한 사례'를 모으는 것으로 삼았다. 최소 10명의 남성을 인터뷰하는 것이 목표이며, 현재 진행 중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며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들을 옮겨 적어본다. 첫째로 성관계에 필요한 노력(콘돔 구입, 분위기 조성, 모텔 예약, 관계 행위, 행위 후 정리 등)은 인터뷰에 참여한 남성들이 자신의 파트너보다 많이 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한 인터뷰 참여자는 딱히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인터뷰 참여자는 예전의 연애를 떠올리며, 그때의 파트너가 "남성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지배적 남성성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둘째로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을 묻는 질문에, 인터뷰 참여자 중 몇 명은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갈등 순간에서부터 성관계를 거부하는 '의외의' 순간까지 인터뷰 참여자들은 대화라는 방법을 통해 파트너를 설득했다. 자신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그 가운데에서 합의점을 찾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었다. 한 참여자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다음 날로 갈등을 넘기지 않고 그날 대화를 통해 해소하거나 합의점에 이른다고 했다. 


아직 인터뷰가 끝나지 않아 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정보가 생길 수 있지만, 우리 사회의 지배적 남성성을 자각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방법(주로 대화)으로 관계의 만족도를 높이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들의 이야기를 잘 분류하고 서사화해서 연말에 한 권의 보고서로 작성해야겠다 싶다. 누군가가 우리 연구를 활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그런데 연구를 진행할수록 "관계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대화인 것을 여성들은 이미 아는 것 같은데, 왜 남성들은 모르는 것 같지?" 하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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