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한 남성성과 거리 두는 방법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에서 수행하는 연구에 가장 중요한 레퍼런스 논문이 있다. 김엘리 선생의 『20~30대 남성들의 하이브리드 남성성』이다. 심층 면접을 방법론으로 채택하여 근대적 헤게모니 남성성과 불화하는 청년 남성들의 경험과 해석을 담은 연구다. 청년 남성들은 그들이 요구받는 남성성을 수행하는 데 있어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가부장과의 거리를 두는 '부정',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약화로 인한 '협상' 그리고 헤게모니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존 남성들과 좀 다른 남성이 되기 위한 '차용'까지. 그중 우리 연구에 기준이 될만한 유형은 '차용'이었고, 이 지점에서 나의 페미니즘 활동 이유도 얼핏 추측해볼 수 있었다.
남성이 왜 페미니즘 활동을 할까? 김엘리 선생의 연구 면접자들에게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비전통적 남성성의 행위가 가사노동이었다고 한다. 동등하고 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을 통해 '한남'되기를 멀리하고 좀 다른 남성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면접자들은 아버지의 집에서는 엄마와 누나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한남'이며, 동시에 자신의 연인 또는 동거인 관계 안에서는 '좀 다른 남성'이 된다. 이렇게 양가성을 동시에 지니는데, 김엘리 선생은 이를 분열하는 두 자아로 설명한다. 헤게모니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성찰적 자아'와 젠더 규범 안에서 남성으로 승인받는 '실재적 자아'간의 분열. 그리고 그 분열은 헤게모니 남성성과는 다른 남성성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연구에 참고할 만한 부분이고,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건 그 뒷부분이었다.
면접자들은 기존 남성성과 거리를 두기 위해 크게 두 가지를 수행한다. 첫째는 기존 남성문화와의 선택적 단절. 예를 들어 성매매를 하는 친구와의 절교, 여성 혐오를 발설하는 SNS 끊기 등이 있다. 나 또한 대학생 때부터 해오던 실천인데,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항상 "언제든지 뛰어내릴 수 있게 낙하산을 메고 있지"라고 표현했다. 유해한 남성성을 풀풀 풍기는 지인, 친구 또는 집단이라면 언제든지 탈출할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거리두기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변화를 위한 적극적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공공이익을 추구하는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식이다. 나에게 이러한 노력은 [남함페] 안에서의 연구 활동과 운영위원 활동이 아닐까 싶다. 시위에 참여하거나 모임을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기존의 유해한 남성성을 발견하고 뿌리를 추적하는 활동을 통해 변화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어찌 보면 모두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행동이다. 낙하산을 메고 유해한 인간관계를 끊어내는 것과 남성성에 대해 연구하는 것. '한남'과 '좀 다른 남성' 사이에서 분열하는 자아를 통합하기 위한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자기변명을 해보자면, 동기야 어떻든 우리 사회가 평등해지는데 개미 눈곱만큼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 그래 그게 어디야. 자아 통합까지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사회에 도움이 되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논문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