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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이 Dec 12. 2022

섹스 말고 다른 이야기는 없을까?

책『우리가 나쁜 페미니스트다』리뷰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렀다. 친분이 있는 점원과 인사를 나누고 책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랗고 얇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문구가 눈에 확 띄어서였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출간 이후 유명해진 단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불완전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낸 책이다. 그리고 내가 집어 든 노란색 책은 정혜윤, 이라영, 임솔아 작가가 록산 게이의 책을 읽고 함께 나눈 대화를 묶어 만든 대담집이다.


책에는 작가들이 주변이들로부터 들어왔던 페미니스트로서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머리 스타일이 왜 그렇냐, 남자 싫어하냐 등등의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비건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면 식물도 아프지 않냐는 식의 빈정거림까지 듣는다고. 이런 반응들이 지긋지긋한 작가들은 이제 진도 좀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언제까지 머리 얘기, 역차별 얘기만 할 수 없지 않냐는 뜻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생각하면 남성 집단에 대한 우려가 갑작스레 밀려온다. 나이를 불문하고 남성 집단 안에서는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섹스라는 깔때기에 전부 들이붓는다. 연애 고민을 나눠도 섹스 이야기,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도 섹스 이야기, 뭐든 섹스를 빼놓고서는 대화가 안 되나 싶다. 나는 여태껏 남성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 집단(모임)에서 섹스 이야기를 안 한 적이 없던 것 같다.


떠올려보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성과 사랑에 대한 인식을 남성성이라는 틀 안에서만 학습해왔다. 부모의 역할과 성교육, 야동으로부터 배우는 폭력적인 섹스 방법, 온갖 매체에서 보여주는 로맨틱한 남성의 역할과 의무까지. 틀 밖의 남성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배워본 경험이 없기에 남성 집단 안에서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성과 사랑에 대한 상상력을 더하고, 더 다양한 이야기 주제를 끌어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더 많은 남성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나쁜 페미니스트다』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연애하지 않는 사람도 자기가 사랑하는 나름의 것들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남성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라영
: '나는 해피엔드를 꿈꾼다.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다른 존재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거잖아요. 이게 사실 사랑 아닐까요?

정혜윤
: 그렇죠. 제 방식의 사랑이죠.

『우리가 나쁜 페미니스트다』, 4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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