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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이 Apr 11. 2024

엄석대는 나를 왜 때렸을까?

*이 글에는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폭력을 묘사하는 표현과 문장이 등장합니다.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상처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모든 분들께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무릎 꿇었다. 제발 때리지 말아 달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손을 모아 빌며 애원했다.


그는 안경을 벗으라고 했다. 남자가 자존심도 없냐고 비웃으며, 일어나 스파링 자세를 잡으라고 했다. 땅을 짚고 일어나니 얼굴로 주먹이 날아왔다. 얼굴을 움켜쥐니 허벅지를 걷어차였다. 몇 번이나 걷어차이다 비틀대자, 그들은 재수 없으니 꺼지라고 했다.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길거리를 걸었다. 어느 아파트 상가, 아무도 오지 않는 후미진 계단 구석에 주저앉아 소리죽여 울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하지? 내일 학교는 어떻게 가지? 학교 가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싫다.'


다음 날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남성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낄낄거리는 소리, 우와 감탄하는 소리.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에 가려 무리 옆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어제의 내가 있었다. 작고 작은 핸드폰 화면에 무릎 꿇고 빌던 어제의 내가 들어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킥킥 웃었고, 나를 때리던 그를 보며 감탄했다. 그 순간부터였다. 학창 시절 나의 세상이 뒤틀린 게.


중학교 3학년, 나를 때리던 그의 말은 내 인격 속에 깊게 찔러 박혀 있었다. "남자가 자존심도 없냐?" 남자는 무릎을 꿇으면 안 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맞서야 하고, 맞을 것 같으면 차라리 내가 때리고, 누군가 싸우자고 하면 "그래 한 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맞서야 한다는 거다.


그의 '남자다움'에 못 미치는 인간이던 내가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멸시하는 눈빛, 비난하는 언어 그리고 몸으로 느꼈던 고통이 나의 하찮음을 상징하며 몸과 기억에 강하게 박혔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 그래서 나는 나를 혐오했다.


학창 시절 폭력의 경험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교를 간 이후에도 한 달에 하루는 꼭 수업에 결석했다. 일상의 무언가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하는 날, 그날 밤에는 여지없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고통받았다.


하지만, 학과 동기와 후배들끼리 만든 책 모임에서 정희진 작가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은 뒤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밤새 울어야 지나갈 수 있던 힘든 밤들이 사라졌다. 폭력의 기억도 점점 옅어졌다.


변화를 깨닫게 된 어느 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억으로부터 괜찮아졌는지 곰곰이 고민해 봤다. 그 결과 나를 폭력으로부터 해방해 준 건 분명 페미니즘임을 알게 됐다.


페미니즘은 내가 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납득 가능한 언어로 그리고 가장 논리적으로 설명해 줬다. 그 누구도 성별, 지역, 신체, 외모 등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남성성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려줬다.


남성성은 이항 대립의 조건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여성이 할 수 없는 것을 남성만이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성성은 완성된다. 여성 대 남성, 소극적 대 적극적, 집안 대 집밖, 육아 대 노동 등의 이분법이 존재해야 남자다움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이분 체계에서 남성이 아닌 것은 모두 여성적인 것으로 취급받는다.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남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남성은 여성화된다. 이들은 '여성화된 남성'을 비난 또는 폭력으로 격하시키고 학급사회 내 위계질서 상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나아가 이 폭력은 반드시 대중에게 전시되어야만 한다. 대중이 '정상적인 남성성'의 양태를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이상적인 남성으로 사회적 승인을 받기 때문이다. 무릎 꿇고 빌었던 나의 모습을 핸드폰 영상으로 찍어 학급 내 남성 친구들끼리 함께 본 행위 자체가 이러한 사회적 승인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그 뒤틀린 체계를 깨뜨리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이자 동시에 내가 나를 지키는 단단한 신념이기도 하다.


이상적인 남성에 편입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단단하게 붙잡을 수 있는 방패 같은 신념. 나를 넘어 내가 아끼는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펼쳐내는 따뜻한 신념. 그리고 시선을 넓혀 세상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렌즈.


그것이 남성도 페미니즘을 해야 하는 이유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 이 글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에서 활동하며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 원문 링크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10/0000115732?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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