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거나 탁한 영혼에 관한 기록
자동차 한 대가 시골길을 갑니다. 젊은 아빠가 운전하고 조수석에는 초등학생 아들이 앉아 있습니다. 길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습니다. 게다가 차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에 막 접어들었습니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온다면 진땀깨나 흘리게 생겼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아빠는 내심 긴장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언덕 위에서 작은 트럭이 내려오는 게 보입니다. 작다고는 해도 트럭은 트럭입니다. 승용차에 비하면 덩치가 훨씬 큽니다. 좁은 길에서 트럭과 마주치다니, 된통 걸렸습니다. 서둘러 비켜서려는데 길이 좁아 마땅치가 않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자 승용차는 오른쪽 바퀴를 길가 비탈로 밀어 붙입니다. 차 무게를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흙이 단단해 그나마 다행입니다.
승용차가 길을 내 주려고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동안 멀찍이 서서 지켜보던 트럭은 이윽고 지나갈 틈이 생기자 천천히 빠져나갑니다. 길이 터졌다고는 해도 한쪽 바퀴로 길 가 풀숲을 밟아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좁습니다. 그래도 트럭은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며 상향등 두 어 번, 운전석을 지나치며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입니다. 아빠 역시 가벼운 목례로 답합니다.
차는 다시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치받아 출발하느라 엔진 소리가 요란합니다. 차가 정상 호흡을 되찾기를 기다렸다가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좁은 길에서 차들이 마주치면 누가 양보해야해?” 아들은 평소에 운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차에 탈 때면 핸들, 엑셀, 브레이크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늘 살피곤 합니다. 이번엔 운전기술이 아니라 도로에서 마주치는 차들 간의 우선순서, 그러니까 관계를 묻고 있습니다. ‘이런 게 사회화 과정인가?’ 아빠는 속엣말을 하며 아들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음, 운전 잘하는 사람이 양보하면 될 거 같은데?” 오래전 면허시험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올라가는 차가 비켜서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도로에서는 소용없는 말입니다. 더러는 자존심 싸움 하듯 막무가내로 버티는 차도 있고, 운전에 서툴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차도 있습니다. 도로에서 맞닥뜨리는 경우는 대부분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이럴 때 “도로교통법”이 어쩌고 “우선순위”가 저쩌고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스스로 생각하기에 운전 잘하는 쪽이 길을 터주면 됩니다. 아빠 말을 들은 아들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생각에 잠긴 듯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