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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Oct 03. 2020

지하철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일

책 <흐느끼는 낙타>에서 발견한 삶의 태도


혜란님, 이것  찾아주세요!
혜란님, 잠시 회의 괜찮아요?


출근은 9시지만 사방에서 들어오는 업무에 정작 ‘나의' 일은 사람들이 퇴근한 18시부터 시작된다. 꼭 끝내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부랴부랴 하다 보면 밤 10시. 이건 아니다 싶어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빌딩 숲 을지로역을 지나온 2호선 열차 안은 사람들로 빽빽하다. 사람들이 뭘 하다 이제야 집에 가는지 궁금해할 틈 없이 빈자리만 찾아 헤맨다. 내가 앉을 자리는 없다. 결국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 앞에 선다. 열차의 문이 열릴 때마다 내 앞에 졸고 있는 그가 내리길 바라며 기대했다가 또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내가 내릴 역이 가까워질수록 그가 더 미워진다. 그러곤 혼자 중얼거린다.

 

 , 사람  없는 데서 살고 싶다.


도서 <흐느끼는 낙타>는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사는 중국인 싼마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의 상상처럼 사막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서 싼마오는 작은 차로 매일 사막을 달린다. 남편이 일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면 왕복 100km. 광활하지만 적막한 사막을 오가며 길가에서 우연히 사람들을 차 옆자리에 태운다. 흙먼지를 뚫고 발을 내딛는 노인, 산양 한 마리를 낑낑대며 끌고 가는 노인, 모래 먼지 속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 소년, 오후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걸어 시내로 가는 군인까지.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들은 모두 수줍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싼마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가 하면, 싼마오의 손을 힘껏 쥔 채 이빨 빠진 입으로 감격스러운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렇게 싼마오는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듯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운전대를 잡는다.


싼마오는 사막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곳에서는 모래 한 알, 돌멩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 없다. 헌데 그 생생한 얼굴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나는 싼마오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었더라면 사막을 사랑하지 못했을 거라 추측한다.


우리는 내일도 어김없이 야근 후 지하철에 오를 것이다. 물론 자리는 없고 내 앞에 앉아있는 이가 하차하기만을 바랄 것이다. 그럴 땐 자신이 싼마오라고 상상해보자. 이곳은 사막이며, 졸고 있는 이 사람은 사막을 60km쯤 달리다 만난 사람이라고. 모래바람을 헤치고 걸으며 가족이 기다리는 천막을 향하던 사람을 내 차 옆자리에 태운 것이라고. 상상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 사람을 더 따뜻하게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모래바람을 뚫고 가는 사람을 응원하듯 마음속으로 ‘화이팅’을 외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사람일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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