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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Oct 03. 2020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

이길보라 감독의 이야기에서 밑줄 그은 문장

뒤늦게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NGO에서 처음 일하길 선택하면서 내가 갈 길은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하고 싶은게 분명해서 좋겠다"고 말했고 정말 그런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스스로를 '환경 커뮤니케이터'로 정의하고 다양한 일들을 해내고 있으면서도 매일 고민 웅덩이에 빠진다. 세상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고 내가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하고 싶은데 그럴 수록 내 마음이 위축됐다.


"커뮤니케이터라는 이름을 달고 제대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쩌지?"

"엉성한 결과물을 내놓으면 누군가 나를 비웃지 않을까?"

"세상은 나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할까?"

"이런 정체성으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해보지 않으면   없었던 질문하는 예술가, 질문을 던지면 세상이 바뀔까?


그러다 팟캐스트 헤이리슨에서 이길보라 감독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제목에서부터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 팟캐스트를 플레이할 수 밖에 없었다. 2시간 내내 이길보라 감독은 단단한 음성으로 계속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내게 와닿은 문장을 정리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2년 내내 끊임없이 배웠어요. 졸업 후엔 어느새 결과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다시 과정 중심 사고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어요. ・・・ 제가 전에 작업한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모두 끝나고 완결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제 작업에 응용될 수 있고 그게 새로운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과정을 갖게 됐어요. 결국 저는 계속해서 어떤 질문들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 나가는 연구자예요. 글과 영화, 말하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답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찾아 나가는 사람이죠. 그렇게 보면 모든 작업들이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요. 외부에서 볼 때 실패처럼 보이는 작업들도 저에게는 의미있는 성취이고 작업이죠.

어떤 일을 하나 벌일 때 마다 설렘과 동시에 부담감이 밀려온다. 제대로된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어쩌지? 어떤 임팩트도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쩌지? 한국사회를 벗어나본 적 없는 나에게 결과중심적인 사고는 당연했다. 나 또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평가 해왔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궁금해하고 동경했지만 실패한 사람의 과정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록 더해지는 건 부담감 뿐이었다.


절대로 실패한 사람이 되면 안돼.


이길보라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질문 해보았다. 사회가 규정한 대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런 사고방식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의 나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실패로 규정한다고 한들, 언제고 내 안에서 새롭게 꿰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사회가 규정한 목표치에만 가닿으려다 보면 나를 잃게 되는 법이니까.



예술은 결국 사회에 메세지를 던지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합니다. 낯설게 보기, 다르게 보기를 가능하게 하는 거죠. 자본주의의 굴레를 아주 잠시라도 멈춰 보거나 뒤집어 보게 하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등 많은 것들을 질문하게 해요.

환경 커뮤니케이터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나서도 늘 고민했다. 내가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되는 것? 모두가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것? 이게 아닌데... 싶을 때 이길보라 감독의 이야기에서 답을 얻었다. 맞다. 커뮤니케이터는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구나. 질문은 각자의 삶으로 파고 들어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되겠구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모양을 그려주는 대신,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나의 역할이구나. 내가 해야할 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써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구나 깨달았을 때죠. ・・・ 자그마한 변화의 순간들을 마주하는 것에 크게 감사하게 돼요. ・・・ 그의 어머니가 수어를 하며 제 눈을 볼 때,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과 내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 밝아나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거죠. 이런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는데서부터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가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왜 이렇게 참여를 안할까? 왜 이렇게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 답답할 때 있었다. 간혹 누군가의 무지함을 폄하한 적도 있다. 이길보라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나를 반성했다. 세상은 오만함으로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바뀌는 것이라는걸 곱씹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무력해지는 대신 나의 친구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자. 그들과 관계 맺으며 같이 세상을 바꾸어 나아가야지.



돈이 인생 최고 가치가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나 계기들이 이 사회에 더 많아져야 된다고 봐요. 아름다움을 좇는 것, 무용한 것, 재미있어서 하는 것들이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을 하면서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구나, 아름다움이란 이런 거였지 재발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한다고 믿어요.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경험, 저는 그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나는 절대 네가 될 수 없지만, 네가 되어 보려는 노력을 해 나간다는 것.

요즘 자꾸 초조해진다. "돈 벌어야 되는데", "돈은 어떻게 많이 벌 수 있지?" 자꾸 사람들 돈버는 얘기에만 관심이 간다. 그리고 매일 갈등한다. 지금이라도 기업에 취직해야하는 건 아닐까? 돈을 버는 구체적인 기술을 학습해야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길보라 감독의 말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아름다움을 좇는 것, 무용한 것, 재미있어서 하는 것들이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나의 삶을 이해받으며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돈 때문에 위축되거나 초조해지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관계, 분위기, 감정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야지. 나의 활동을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멋진 가치로 정의해 나가야지.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일테니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이길보라 감독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싶다. 그리고 팟캐스트에서 마무리 인사가 흘러 나올 때에 상대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참으로 멋진 거라고. 당신의 쓸모를 돈의 가치로만 평가하지 말라고. 더 멀리 함께 나아가자고.


번외의 이야기지만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예술가의 이야기에서 담아낸 헤이리슨의 기획력에 간탄했다. 꼭 한번 들어보시길. 텍스트로 간략하게 정리된 인터뷰 내용을 보려면 이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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