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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Aug 22. 2020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해? 재밌으니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 7가지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사랑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애정 하지만 가끔 미치도록 미워한다. 프로젝트별로 무게는 다르지만 고정적으로 두 개, 간헐적으로 두 개의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본업보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이외에도 내게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 노트'가 있다. 이 곳엔 스물아홉 개의 아이디어가 잠자고 있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어차피 '생각은 자유'아닌가. 자본과 능력을 차치하고 상상하면 자유로워진다. 덕분에 나는 늘 하고 싶은 프로젝트 투성이다. "나는 왜 이렇게 프로젝트를 좋아할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되어줄 것이다.

가장 오른쪽에 앉아있는 단발머리가 접니다!!

재미있잖아

'놀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무얼 떠올릴까?


분명 모두 다른 걸 상상할 것이다. 나에게 놀이는 '자율 노동'을 뜻 한다. 누군가가 시켜서(회사에서 가치에 맞지 않아도 해야 하는), 혹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가사 노동 같은)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동력이 생겨 시작한 노동 말이다. 나는 이 자율 노동, 사이드 프로젝트를 무척 사랑한다.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부침도 있고, 난관에 부딪히지만 지속하는 중심 줄기는 '재미'라는 감정 덕분이다.


간혹 누군갈 험담하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쏟아지는 모임에 다녀올 때가 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떤 호기심도, 삶에 대한 확장도, 혹은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도망가고 싶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건 명백한 시간 낭비다. 그래서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새로운 주제에 대해 호기심이 계속 생겨나고 또 나의 세상이, 생각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가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내게 재미란 "호기심이 생기는 주제를 바탕으로 생각이 확장되는 것, 더 나은 세상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나도 일 좀 해보자

조직에서의 일이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치고 들어오더라도, 기획해 진행하던 일이 모조리 뒤집힌다 하더라도 이를 감안하고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늘 스트레스받는 나에게 선배들은 일에 대한 욕심을 거두고 흐름에 맡기라고들 한다. "그럼 나는 왜 이 조직에 존재해야 한담?" 반발심이 차오르지만 선배들은 지혜로웠다. 결국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내맡겨지기 때문이다. 결과에서도 해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담당자'인 나는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 가장 큰 죄책감, 패배감을 느끼고 만다. 이는 번아웃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조직에서 나의 일은 늘 그래 왔다. 잘되면 조직 탓, 안되면 내 탓이었다. 이민경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조직에서의 실패를 나의 실패로 정의하지 않기 위해, 나의 승리 서사를 만들기 위해서 계속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선에서
무엇인가 해냈을 때의 성취를 기준으로 삼고
우리만의 승리 서사를 써 나가야 한다



"니가?" 스스로를

업신여기지 않을 기회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일하는 나'를 낮추며 살아왔다. 일의 시작에 앞서 늘 낮은 마음이었다. 스스로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맡은 일이 잘 되더라도 온전히 나의 덕으로 돌리지 못해 왔다. 야근하는 건 일을 못 하는 내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노동력을 스스로 무급 처리 해왔다.

 

한 번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지원사업 신청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있었다. 스스로를 업신여기던 나는 이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으나 부족한 부분은 동료들이 채워줄 거란 든든함으로 지원서를 써 내려갔다.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휴가까지 내고 카페에서 종일 지원서만 붙잡고 있었다. 1차 작성본을 동료들에게 공유를 하고 보니 하루가 끝나고 있었고, 문득 내가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를 감각했다. 원래였으면 "내가 부족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 걸 뭐"하고 사비를 들여 스스로를 다독였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정당하게 보상받고 싶었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카톡으로 동료들에게 외쳤다.


보상받고 싶어요! 공금으로
과자 사 먹어도 됩니까?


(그 와중에도 내 노동에 대한 값을 낮춰 아메리카노(약 5천 원)를 고민하다, 과자(약 2천 원)로 정했다는 사실) 동료에게서 답이 오기까지 조마조마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한 동료는 "당연히 먹어도 되죠"라며 "카페 음료도 사 먹으라"고 답했다. 내가 나를 처음 지켜낸 순간이었다. 나의 말에 동료들은 충분히 공감하고 반응해주었다. 덕분에 과자보다 조금 비싼 핫도그를 먹으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함께 하는 동료들 덕분에 앞으로도 나의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고 보상받을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갖게 됐다. 정당하게 보상을 요구하는 일에서부터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 내가 한 일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 나의 노동을 값싼 자원으로 여기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행사 리허설 장면. 웃음기 쏙 빠진 접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조직에서는 내용은 다르지만 형태는 비슷한 역할을 반복하다 보면, 일의 흐름이 머리에 그려진다. 이것이 3년 차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일 것이다. 그런데 사이드 프로젝트는 다르다. 세 명이 기획부터 운영, 홍보까지 엉켜서 처리하다 보면 정말 자신 없는 일도 담당하게 된다. 망설일 시간은 없다. 그냥 해내야 한다. 가장 떨리던 건 현장이다. 처음 보는 참가자들을 마주하고 편안하게 현장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고, 소외된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더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인지될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려야 한다.


분위기는 계속 얼어 있고, 참가자들은 생각보다 호응이 없으며,  동료들과 손발도 안 맞아도 어쩌겠나 도망칠 순 없으니 오롯이 중심에서 현장을 주도해 간다.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나 이런 거 꽤 잘하는 사람이구나! 새롭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조직에서의 일과 달리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뭘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에겐 뭐가 됐든 작게라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엠 그라운드

회사 이름 빼고 자기소개하기

언젠가 자기소개를 하다가 깨달았다. 나를 소개할 때 내 이름보다도 조직 이름을 먼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해서 조직에 속하지 않은 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란 걸, 나는 조직의 영향력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걸, 스스로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걸. 지난해 퇴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을 때, 조직에 속하지 않은 나를 정의해내야 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에 더 욕심을 냈다.

 

조직에서의 일은 퇴사하는 순간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 버리므로, 내 것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 나는 조직 이름을 빼고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에 대한 내 욕망의 흐름을 읽어내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나를 탐구하며 얻은 결과다. 조직 이름을 빼고 나를 소개하는 일에서부터 진짜 자기소개가 시작된다.


지속가능한 삶을 제안하는
커뮤니케이터 이혜란입니다.
환경 문제를 재미있게 풀어 전달하기위해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기

내가 다녔던 조직의 구성원은 대체로 자기 이해가 높은 사람들이었고, 늘 사회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었다. 결이 잘 맞았다. 8시간 이상 이들과 붙어 있다 보니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고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시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퇴근하고 나면 늘 함께 저녁밥을 먹었고, 카페에 가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주 서로의 집을 오갔다. 우리 대화의 중심에는 늘 환경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고민이라면, 매일 똑같은 고민이 반복되는 거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로 만들어 해결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누군가가 말했다.


스타트업이나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좋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그다음에 사업의 아이템을 논의하면 된다고. 사업을 하다 보면 기대와 다르게 매번 상황에 부딪히고 방향이 바뀌곤 하는데, 사업 아이템만 보고 합류한 사람은 방향이 바뀌었을 때 해체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우선으로 모인 곳이라면 더 좋은 방향을 위해 머리를 맞댈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어떤 것이든 재밌다고 생각했으니까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마음이 나와 동료를 묶어 주었다.



사회적 임팩트 만들기

사회적으로 임팩트를 내고 싶다는 이 욕망은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땐 알지 못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언 8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우리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이때 이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문제를 나열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프로젝트에 들인 품에 비해 참가자, 대상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재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우린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메세지를 알아주길 바랐다.


새로 알아차린 욕망이었다. 우리끼리 재밌다고 한들, 아무도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떤 파급력도 없다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회고의 시간 덕분에 우리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를 인지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벌여가는 과정에서 이를 기준점으로 세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와 동료들의 고민을 사회적인 고민으로 확장하는 것, 이 과정에서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명문화한 프로젝트의 방향이다.


이 글을 써내려 가며 꽤 명쾌한 답을 얻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나갈 수밖에.


<아무튼 사이드 프로젝트>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느꼈던 다양한 생각과 팁을 담을 예정입니다. 격주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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