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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진모 Jul 26. 2015

상처입은 사슴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어렸을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발의 뼈가 산산조각 나버려 그녀의 오른발은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녀가 죽기 일 년 전에는 합병증으로 인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을 제작할 당시 프리다 칼로는 고대 동양의 종교와 미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사슴은 그녀의 고향인 멕시코와 유럽 문화와 종교적 미신의 동화작용으로 탄생했습니다. 고대 아즈텍에서는 사슴이 '오른발'을 상징했습니다. 그녀는 아즈텍의 미신을 그림에 담아 '그녀의 상처받은 오른발'에 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의 숲 한가운데에는 프리다 칼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수사슴이 보입니다. 울창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숲의 나무들은 중앙의 사슴을 압박하고 포위하며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적이고 공포에 가득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키우던 사슴인 '그라니쏘'를 모델로 이 사슴을 그렸지만 이 사슴은 프리다 칼로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에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의 초상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개의 화살은 사슴의 몸을 관통해 피를 흘리게 하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화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그녀의 오른발의 고통은 물론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인해 겪게 된 여러 상처들이 그 고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슴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지만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입니다.



그림의 왼쪽 하단에는 운명을 뜻하는 'Carma(카르마)가 적혀있어 그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극도로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끝까지 살았던 그녀의 마음속엔 자신만의 희망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프리다 칼로의 무기력함이나 수술 실패로 인한 절망감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요소들도 보입니다.



번개와 폭풍은 사실 좋은 의미보다 안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림 후경의 번개가 치는 모습은 밝은 분위기로 그려졌으며 마치 절망에서의 돌파구처럼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분명 그녀는 화살을 맞은 채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 찬 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등 뒤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천둥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돌렸고 마침내 울창한 숲을 벗어나 희망의 바다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절망과 공포의 숲에 갇혀 버려 이제 곧 쓰러질 것이라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쉽게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 희망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신다고요? 심지어 저렇게 큰 천둥소리인데도요? 그건 아마 희망의 소리가 존재하지조차 않다고 믿는 당신의 굳어버린 관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상처 입은 사슴/ 1946 / 22x30cm / 캔버스에 유채 /캐롤린 휴스턴 콜렉션


"나는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은 행복하다."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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