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큰 로망이 있다.
술에 잔뜩 취해, (위스키였으면 좋겠다) 병나발을 불면서 비틀비틀한 발걸음으로 잔디밭을 걷고 싶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철퍼덕 넘어져서 잔디에 볼을 파묻고 하하하 크게 한번 웃고, 몸을 돌려 밤하늘에 무수한 은하수 별을 헤벌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싶다. 다시 병나발로 술을 한번 벌컥벌컥 마시고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잠들어 버리는 로망.
하지만 이루기 힘든 로망이다. 나는 애초에 잔디밭에 뒹굴 만큼 취하지도 못한다. 취하기 전에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 심장이 쿵쾅 거리고, 속이 울렁거리다가 결국 변기를 붙잡고 모든 걸 토해낸다. 20대에는 젊으니까, 술자리가 좋아서, 마시고 토하고 또 웃으며 끝까지 자리에 남았다. 이제는 의미 없는 술자리는 피곤할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무리하게 술 마시고 토하는 게 고통이라 싫어졌다. 잠들기 힘든 밤이나 몸에 긴장을 풀고 싶을 때, 집에서 맥주 한 캔이나 위스키 한 잔이면 충분하다. 그마저도 3~4개월에 있을까 말까.
술 마시는 빈도가 낮으니, 술이 마시고 싶을 때 편의점에서 맥주 1캔만 사 온다. 테라 1캔에 2,500원인데 음료수 하나 사 먹는 가격이라 경제적 부담도 없다.
며칠 전에도 긴장 좀 풀고 싶어서 늦은 밤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골랐다. 손에 맥주 한 캔 덜렁 들고 편의점 문을 밀고 나가는데, 문득 아파트 단지를 걸으면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싶었다. 작은 로망이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아파트 정문까지 손에 들고 있는 맥주만 만지작거리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이렇게 소소한 로망에도 망설이는 나 자신이 답답해서 정문 앞에 걸음을 멈췄다. 바로 캔 뚜껑을 까고 벌컥 하고 맥주 한 모금 마셨다. 속이 조금은 시원한 기분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아파트 단지 안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제멋대로 불이 켜진 아파트 창문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별 없는 밤하늘이 익숙해진 게 쓸쓸했다.
맥주를 계속 마시며 놈팽이처럼 술 마시는 나를 또 상상했다. 홀로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고 꺼이꺼이 울다가, 멍하니 밤하늘을 보며 헤벌쭉 웃고, 아무도 없는 이 공간이 외로워 잔디를 부여잡고 끄윽끄윽 한참을 울다가, 위스키 병나발을 한 번 들이킨 뒤, 다시 멍하니 별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나의 모습.
이런 상상을 하다가, MBTI T 성향인 나는 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내가 술에 잘 취한다 해도, 저렇게 놈팽이처럼 잔디밭에서 구르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경찰이든, 지나가던 사람이든, 엄마이든, 관리인이든 누군가는 내 등짝을 때려가며 집이나 경찰서로 데려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선 밤하늘에 별 보기가 어렵다. 이 로망을 정말 이루려면, 지방 어딘가로 내려가거나 별이 잘 보이는 산속에 들어가 술을 마셔야 할 텐데,
귀신이든 괴한이든 튀어나올까 봐, 도저히 혼자선 못 할 짓 같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나는 어쩌다 이런 로망이 생겼을까.
아마 나는…. 사회에서, 내 인생에서, 제정신으로 사는 게 버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가끔은 인생의 짐들을 망각하고 껄껄 웃고 싶거나, 아니면 내 마음의 불안과 서글픔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종종…. 아니, 꽤 많이.
술을 못 마시면 차라리 눈물이라도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펑펑 울어서, 속을 게워 낼 수 있게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눈물도 너무 없다. 이런 감정들을 견디지 못해, 가끔 SNS에 내 우울함을 전시하듯 올리곤 했다. 하지만 내 이미지를 깎아 먹는 일인 것만 같아 결국 황급히 지워버렸다. 그렇게 어딘가에 제대로 뱉어내지 못한 감정들을 내 안에 차곡차곡 불안과 슬픔으로 쌓여갔다. 이런 울분들을 어떻게든 토해내고 싶었고, 그 마음이 이런 로망으로 이어진 것 같다.
회사에 출근하던 어느 날, 새벽 6시쯤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정류장 근처 벤치에 크로스 가방을 어깨에 멘 한 남자가 널브러져 자는 걸 발견했다. 남자를 잠시 바라보며, “살아있겠지?” 하는 짧은 걱정을 스치듯 하고는
정류장 앞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그 남자를 바라봤다. 한심하다는 생각보다는 ‘끝내주는 밤을 보냈구나!'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제정신으로, 다시 사회로 출근하는데, 당신은 아직 그 취하는 밤에 머물러 있군요, 하면서 말이다.
나도 아주 가끔 내 로망에 가까운 일탈을 집에서 한다.
위스키든 소주든 내 주량보다 과하게 일부러 마신다. 그렇게 조금씩 올라오는 취기를 느끼며, 혼자 있는 집 안에서 그 취함을 마음껏 즐긴다. 거실 벽을 잡고 비틀비틀 취한 발걸음 즐긴다. 화장실 가서 거울을 본다. 아주 벌게진, 새빨간 내 얼굴. 그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또 웃고 만다. 그러고는 잔디밭 대신 넓은 침대에 철퍼덕 넘어지듯이 누워 서글픔과 외로움 속에 헤엄친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부여잡고 다 게워 내는 게 엔딩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속이 좀 시원하게 풀린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어렵다. 술 먹고 토해내는 고통이 슬픔을 이겼다.
얼마 전, 차로 엄마를 집에 데려다주던 중 버스 정류장 벤치에 널브러져 자는 취한 여자를 또 한 번 보게 됐다. (글을 쓰다 보니 깨달은 건데, 대부분 술에 취한 사람은 버스를 기다리다 잠이 들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 같다. 그게 묘하게 서글프네) 엄마랑은 “어머, 어떻게 술 취해서 잠들었나 봐” 하고 말했지만, 속마음으론 “아직 취한 밤에 머물고 있구나.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다.
잔디밭에 술 먹고 병나발 부는 모임 같은 건…. 없겠지. 있어도 인위적이라 리얼하게 못 취할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이뤄보고 싶은 나의 술 로망 이야기였다.
아쉬운 마음에 테킬라 한잔을 곁들이며 이 글의 후반부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