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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Mar 08. 2024

책 표지를 만드는 여정_01

처음에 내가 계약한 출판사에 매력을 느꼈던 건 출판사가 기존에 출간한 책의 표지들이

예뻤던 게 좋았다. 그래서 크게 표지 디자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집필하는 동안 출간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출판사들이 가장 공들이는

부분 중의 하나가 책 표지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도 책을 사면서 표지가 중요하다는 걸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지만, 정말 확 와닿았을 때는 출판사 대표님께 초대권을 받아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었을 때다. 서울 국제 도서전은 코엑스 홀에서 진행되었는데 공간은 광활했지만, 그 크기에 맞춰 사람들도 정말 와글와글하게 많았다. 사람과 사람들 틈 사이로 비집고 다니면서 책을 구경해야 할 정도의 밀도였다.

거기서 여유롭게 책 한 권을 집어서 안에 내용을 살펴볼 여력은 없었다. 그저 사람들 어깨너머로 책 표지를 간신히 구경하는 게 다였다.



국제 도서전에 갔을 때




마음에 들어서 겨우 산 책 한권


그러니 책 표지나 제목이 좀 눈에 띄는 걸 하나 발견했으면 겨우 손을 뻗어 책 한 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겨우 책 한 권을 골랐다. 다른 책들을 더 이상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인파를 뚫고 겨우 나와 출판사 대표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도서전에는 표지로 승부 볼 수밖에 없겠네요. 책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네요”

“그렇죠, 그래서 다들 표지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때만 해도 내 표지는 출판사 쪽에서 잘해줄 거라는 하는 막연한 믿음만 있었다. 그 잘해줄 거 안에 나의 큰 노력이 없어도 되는 줄 알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주 큰 착각이었다.

장강명 작가님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에서도 읽었지만 작가는 표지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하는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래서 일러스트 몇 컷만 그리면 알아서 잘 디자인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몇 달 후 1차 퇴고가 끝나고 출판사에서 미팅을 가졌을 때 본격적인 표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표지 일러스트는 내가 그릴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지만,

표지 전반적인 캐릭터 + 배경은 내가 다 그리면 어설프게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주저했는데, 출판사 쪽은 간단하게 캐릭터만 그려도 될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서 내 스타일대로 그림을 러프하게 그려 한두 컷을 보냈다. 레퍼런스로 찾은 자료들과 함께 보내며 레퍼런스로 내가 원하는 분위기 톤을 내비쳤다.


[ 정말 이쯤에서 아니 책을 만들면서 드는 생각은 내 주변에 책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도

표지 그림을 그린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나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


그동안 생각했던 그림을 생각하며 나는 고양이들과 함께 걷거나, 아파트와 들판이 섞여 있는

길가를 배경으로 두었다.



출판사 대표님은 보시더니 

“표지에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면 좋겠어요”

<경기도에 혼자 삽니다>라는 제목이 이미 직관적이라서 산과 들판에 작가님이 걷고 있는 이미지는 너무 다 보여주는 느낌이라서요 조금만 더 고민해주실 수 있을까요? “


나에게는 어려운 문제였다. 원체 나는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고 뭔가 추상적으로 이야기를 함축시켜서 그리는 스타일이 많이 안 해봤기 때문에, 그림 작가로서, 디자이너로서 약간 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출판사 대표님께 전화해서 자문했다. 대표님은 여러 책을 예시로 들어주며 잘 설명해 주셨지만,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손으로 표현을 잘 못할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걱정이 많이 되어서,

만약 표지 그림이 제대로 안 나오면 그냥 그림을 빼고 가는 방향도 생각해 달라고 했다. 대표님도 그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으니 너무 걱정을 말라고 안심시켜 줬다. 어쨌든 출판사와 나는 책 표지가 잘 나오는 게 목표였기에,

내 그림이 표지에 실리고 안 실리고는 중요치 않은 부분이었으니까. 





나는 아무 그림을 여러 개 그리기 시작했다. 도통 나는 산과 들판에서 벗어나지를 못해 머리를 끙끙 싸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게 초고에 썼던 ”방배동은 나의 작은 행성”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행성과 우주, 그리고 혼자 행성에 사는 어린 왕자 떠올라 우주 이미자와 행성 위에 나 혼자 서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때까지는 이것도 뭐 그냥 후보로 두자 하는 마음이었고 내심 산과 들판 그리고 내가 뛰고 있는 거를 하길 바랐는데

대표님이 우주 행성 일러스트가 괜찮다며 이걸로 발전시켜 보자고 했다.


이걸로 한시름 놓을 줄 알았는데, 겨우 산 하나를 넘은 것이었다.

책 표지를 만드는 여정_02에서 계속됩니다.


출판 표지 작업의 교훈 : 
결국 한 번은 이리저리 헤매봐야 한다. 한 번에 잘 나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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