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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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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Mar 29. 2024

14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의 병명을 알게 되었다.

저처럼 멍청한 엄마 또 있나요?

날씨는 흐린데 가슴은 펑하고 터질 만큼 후련한 날이다.


난 왜 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어머니, 알레르기 검사 한번 해보세요. 한국에는 그런 검사해주는 곳이 있어요."

" 아 그래요?. 한국 와서 2년 동안 병원을 이토록 자주 다닐지 몰랐어요... 제2의 집처럼 다니니..."


레슨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그의 첫인상은 너무 까탈스러워 오래갈 수 있을까 했다. 게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고양이 알레르기 때문에 레슨 한번 있는 날이면 대청소를 하고 코코를 베란다에 내보내야 했다. 그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우리 집에 왔다. 수업시간도 자주 변경을 했고 쉬는 날도 많았지만 나의 입장에서 크게 나쁘지 않았다. 1년 반 넘도록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까다로움은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전 독감이 걸렸을 적에도 링거주사약이 더 효과가 좋다고 알려 주었고 심지어 아이가 열이 날 때 오히려 독감인 것 같다며 유튜브로 정보를 공유해 주기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병원을 다시 찾아 독감검사를 했다. 아이는 독감이 맞았다.


그의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난 엄마 치고는 무딘 건가란 생각이 들 만큼 그는 많은 정보를 나에게 공유해 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너무 자주 아픈 아이상태를 보더니 '알레르기검사'가 있다며, 자기도 했다며, 알면 미리 예방할 수 있어 이픈빈도를 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아이가 큰 병은 없지만 항생제, 벤톨린, 풀미코트, 네블라이져로 성장한 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릴 적 건강한 아이를 보면 눈물이 날 만큼 부러웠고, 독한 항생제를 조그만 아이게게 들이부으며 나의 마음은 그저 견디고만 있었다. 유달리 육아가 왜그리 힘든지 몰랐던 나 역시도 아팠다.


그냥 감기로 가볍게 콧물이 나도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는 아이들과 달리 나의 아이는 집에 머물러야 했다. 40도 아래 미열이 뭔지 나는 모른다. 어떻게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하는데 등교를 하며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10년이 넘는 동안 항상 열은 40도를 넘는 아이. 새벽에 기침을 시작하면 기본 2시간에서 3시간씩 토할 만큼 하는 아이. 조그만 바스켓을 옆에 두고 잠이 들어야 했다. 기침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거의 토를 하기 때문에 만발의 준비를 하고 날밤을 샜다. 아이를 안고 벤톨린을 쐬고 배게를 높여 아이를 눕히면 겨우 잠이 들었다. 결국 난 호찌민에서 약사가 되었다.


호찌민 패밀리 메디컬에서 약간의 천식기가 있다고만 했다. 모든 아이들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감기 증상이 심해지면 그럴 수도 있다 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남들과 달랐다.


남들은 날 이해하지 못했다. 날 너무 걱정이 많은 엄마로 취급했다. 왜냐면 그들은 천식이 뭔지 몰랐으니까... 나도 몰랐으니까..아이가 숨이 넘어 갈만큼 기침하는 모습을 그들은 알지 못했으니까... 난 그게 감기인지 알았으니까... 그져 코가 넘어가고 가래가 가슴에 막혀 있어 그런줄 알았으니까... 멍청한 나.


버스를 타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탈 때 에어컨바람, 히터 바람이 아이 코와 입 쪽으로 가지 않도록 평생을 신경 써야 했다. 여행할때는 휴대용 네블라이져를 들고 다녔다. 왜냐면 단지 호흡기쪽이 남들보다 좀 약해서 쉽게 모세기관지염에 자주 걸리는 줄 알았다. 아이도 너무 많이 아팠기에 엄마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 어린 6세 7세, 학교에서 에어컨이 나오면 선생님께 자기가 알아서 바람을 돌려 달라고 말할 만큼 아이도 아픈 만큼 성숙해 있었다.


한약재 홍삼, 녹용부터 안 먹인 약이 없다. 그렇게 아이몸을 만들었고 이를 악물고 수영을 시켰다. 그런 아이를 수영선수로 만들었다.


열이 나지 않는 이상 기침을 해도, 코가 나와도 무조건 수영을 시켰다. 수영 후 아이 숨소리는 맑았고 고여있던 가래와 기침이 사그라 졌다. 그렇게 체력을 만들어 가며 아이가 컸고 어느 정도 괜찮아진 줄 알았다.


한국으로 와서 이상한 증상이 다시 시작이 되었다. 호찌민에서 보다 더욱 심해졌다. 사춘기를 접어들면서 크느라 그런 줄 알았다. 한국에 꽃가루, 황사, 먼지가 호찌민 보다 심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단번에 무너졌다. 코로나부터 시작해서 호흡기 쪽에 다시 이상이 왔다.


나의 무딘 성격이 원망스러울 만큼 난 이비인후과만 다녔다. 종종 벤톨린만 처방받았다. 그럴 때마다 한국 의사 선생님들은 나에게 물었다.


"아이 천식 있어요?".

"아니요, 그냥 이전에 어릴 적 병원에서 감기 심할 때 아이가 약간 그런 증상이 있다며 벤톨린과 풀미코트를 처방해 줬는데 그걸 쐬면 기침이 좀 줄더라고요."

"그럼 확정된 건 아니지요? 왜냐면 약이 달라요 어머니!!!"

"정확히 알고 오셔야 해요."

"그리고 벤톨린 계속 처방받으면 나중에 아이 보험 들 때 힘들 수도 있어요."


작년에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왜 이비인후과에서는 아이가 천식인지 아닌지 모르지? 라고 생각만 들었다. 난 병원 시스템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그저 감기인 줄, 비염인 줄만 알았고 그럭저럭 약으로 버티며 넘어갔다. 그냥 한국 적응기인 줄 알았다.


다시 고열이 난다. 사춘기 아들이 계속 계속 아프다. 나도 마음이 힘들어서 인지 눈물이 계속 난다. 어릴 적 생각이 다시 올라온다. 사춘기 아이가 밤 12시만 되면 기침이 시작된다. 토를 한다. 다시 40도 고열을 찍는다. 이비인후과 약이 잘못 된듯하다. 간에 무리가 간것 같다. 약 복용후 눈에 염증 알레르기가 생겼다. 나의 느낌상 약이 문제 인듯했다. 약을 멈추고 안과를 다시 다녀왔다. 우선 눈은 회복되었다. 새벽 1시 아이가 엄마방으로 찾아온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사춘기 아이가 엄마 옆에서 잠을 청한다. 가슴이 무척 아프다...


캄캄한 마음에 목이 메어왔다. 어디가 아픈 걸까.

내가 뭘 잘못먹인 걸까?

아이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 걸까?

피자, 파스타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영양부족인가?

아 비타민C 다시 구입해야 하는데...

한국 날씨와 계절이 안 맞는 걸까?

이비인후과 약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더이상 찾을수 있는 이빈후과도 없다.

어떡하지?..


마침 레슨 선생님 말이 떠올랐다.

새벽 3시.

인터넷을 검색하며 주변 알레르기 검사하는 병원을 찾았다. 종합병원은 대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침 9시. 편두통으로 자주 가는 내과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간호사분이 알레르기 전문병원을 알려 주었다. 보도 듣지도 못한 알레르기 전문 병원이라니. 이런 병원도 있다고? 두 귀를 의심하고 병원 이름을 검색했다. 정말 알레르기 전문 병원이었다.


아이를 흔들어 깨운 뒤 아침도 굶긴 채로 병원을 찾아갔다. 느낌에 피검사도 해야 할 것 같아 오히려 공복이 괜찮을 듯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검사가 진행되었다.


" 어머니. 아이 폐활량은 천식 있는 아이에 비해 꽤 좋아요. 수영 잘 시키셨어요. 다행이지만 이 아이는 천식 수치가 2배나 높은 아이입니다. 아이 천식이 다시 재발되었습니다."


의사는 재발이라고 했다. 나의 아이는 천식이 있는 아이였고 천식 치료를 받지 못한채 14년간 버텨온 것이었다. 버티기 위해  우리 두 모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난 매번 기침소리만 나면 노이로제 걸릴만큼 불안해 했고, 아이 역시 코가 목뒤로 넘어가는 즉시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우린 엉뚱한 방법으로 버티고 있었다.


처방받은 인헬러. 효과가 꽤 좋다. 드디어 밤에 잠을 잔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의 병명울 들었다.


후....

맺혀있던 가슴이 뻥 뚫렸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계속 흘렀다. 아이가 옆에서 우산을 들고 있다.

"엄마, 거봐, 나 천식이었네."라고 말한다.

"엄마,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말했는데, 나 천식인 거 같다고, 그런데 엄마가 계속 아니라고 했잖아. 그냥 기관지가 좀 약하다고, 괜찮다고... 그런데 난 내가 천식인 것 같았어. 수영할 때 그래서 나 많이 힘들었거든.."

" 미안해. 엄마가 인정하기 싫었나 봐. 그래서 우리 그토록 힘들었나 보다. 그렇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미련한 나를 원망하는 눈물.

아이에게 미안한 눈물.

진작에 천식치료를 했다면 아이도 나도 덜 고생하고 힘들었을 텐데.


나란 사람.

나란 인간.

지독히도 아둔하면서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인간.

그날따라 내가 참 미웠다.


반면에 속은 후련했다.

이젠 안다. 그리고 인정한다. 14년 만에 두 귀로 의사 선생님한테 분명히 들었다.


해결방안도 있고, 치료 방안도 있다.

식습관도 공부 중이다.


호흡기 사용법과 약을 타왔고 하루 만에 아이는 호전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나 돈가스 먹고 싶어. 먹고 우리 영화 보고, 다이소 놀러 가자."

"그래~~ "

아침까지 굶은 아이는 돈가스와 초밥을 흡입했다.

둘이서 영화 '고질라'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도 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고질라를 보면서 울다니.. 줸장!!


다이소에서 식물을 팔았다.

"엄마, 나 다육이 하나 사고 싶어. 엄마도 하나 사."

"그러까?"

둘이서 식물 하나를 나란히 사서 집으로 왔다.


인헬러를 쐬고 알레르기 약을 먹고 현재 많이 호전 중이다.

난 아이를 다시 동네 수영장으로 보내기 위해 등록을 마쳤다.


화분에 옮겨 심고 싶다고 해서 마사토도 구입~


이렇게 글로써 풀고 나니 마음이 조금 덜 아프다.


앞으로 식습관, 식단을 철저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나 없이도 스스로 관리를 해야지만 하는 아이.

습관부터 들여야 한다.


우리 이제 그만 아프자.. 아들!!

그리고

미안하다.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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