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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Jun 02. 2024

항상 가볍게 살고 싶어서...

걸림 없이 이것도 저것도 그냥 해보는 삶.

일주일 중 딱 이틀. 아침에 게으름을 느낄 수 있는 주말 아침이다. 평일 5시 50분 기상을 뒤로 한채 이불 안으로 몸을 꽁꽁 숨겼다. 일상을 고단하고 치열하게 보냈던 아이 역시 늘어져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국제학교 아침 8시 수업 시작. 등교 7시 셔틀버스 탑승. 초중고 다 상관없이 직장인과 동일한 하루를 시작함)


밥과 고기가 힘이라며 매번 분주하면서도 정신없는 아침 준비를 했지만 유일하게 건너뛸 수 있는 주말 아침이다. 여유롭다. 이번주말 아침은 식빵과 시리얼로 때울지 고구마와 맥반석 계란으로 때울지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과일은 사과와 바나나 정도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은채 아침 식사 준비를 머릿속으로만 마치고 있을 무렵 전화진동에 화들짝 놀랐다.


 주말 오전 8시에? 전화?


아이 엄마 친구다.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다. 여름방학 동안 뭐 할 거냐는 다급한 목소리.

.

.

.

한통의 전화로, 그녀가 함께 하자는 말에, 그 어떤 생각도, 어떤 계획도, 어떤 마음가짐도 없이 그냥 '한번 가볼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란 사람 참 가볍게, 그렇게 정말 인생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고 한편으론 또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이유도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틀에서 나와버렸다.


물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더욱 '돈'이라는 존재가 우리 삶 속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현실도 이 늦은 나이에 무척 실감 중이다. 하지만 이 만큼이라도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깊고 깊은 감사한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감사함이 더욱 깊고 깊은 저 아래에서 올라오게 된 계기는, 최근 엄마라는 그녀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 단단하게 굳어 망치로 처 내려도 덩어리째 자리 잡고 있던 그 마음 그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미안함을 더 이상의 원망 없이, 그리움 없이, 갈망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였더니 그녀와의 관계 역시 회복 중이다. 하지만 참 아팠다. 아직도 나와 그녀를 생각하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의 아픈 어린 시절을 이제야 떠나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겹도록 오래 걸렸다.


마치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불어와 하얗고 옅은 꽃잎 조각들이 훨훨 휘날리며 정처 없이 떠돌다 어디론가 흩어지듯 나란 사람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겉에 둘러싸고 있던 거적때기 같은 마음이 걷어지니, 유년 시절 삶이 그토록 불행하지 만은 않았구나라는 밝은 마음이 새싹처럼 올라왔는데 감사함이 함께 묻혀왔다. 그 두 감정은 한 몸처럼, 풀 수 없는 엉킨고 설킨 실타래와 같은 느낌과 감정 같았다.


뭐랄까... 조금의 자유, 해방을 맛본 경험이랄까.. 갇혀있던 곳에서 한 발짝 나온 그런 느낌. 어릴 때부터 그랬다. 조금은 남들과 난 달랐다. 그 부분분을 그녀가 이제야 알아차렸다. 나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딸의 본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더이상 그녀가 두렵지 않았다. 악담을 듣는다해도 그냥 넘길수 있을 정도의 대담함이 생겼다. 더이상 그녀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엄마, 나 하와이 한 달 살다 오려고. 엄마도 같이 갈래?"


이번에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이제 비로소 자기 딸이 어떤 아이인지 아는 듯했다.  


"경비 많이 들겠다. 잘 생각했어. 가서 좀 쉬다와. 엄마도 함께 가면 좋을 텐데 이번에 엄마 아빠도 한 달 동안 태국여행 일정이 잡혀 있어 같이 못 가겠네~. 다음에 또 한 번 가자~"


믿을 수 없는 그녀와 통화였다.

마음이 가볍다.

비난도, 욕도, 비교도 없는 자기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달되는 통화였다.


나의 마음은 이제 깃털보다 더욱 가벼워졌다. 마치 나의 마음이 그녀의 마음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차차 독립 중이다.



항상 입버릇처럼 '나 하와이 가서 살고 싶어~'라며 남편한테 장난 삼아 이야기 했다. 한데 그 순간이 이렇게 갑자기 엉뚱한 계기로 찾아오게 될지 몰랐다. '하노이가 아니라 하와이~~ 가고 싶다~~'라고 심심할 때마다 노래 부르듯 말했었는데... 이렇게 선물처럼 찾아왔다. 아니 그 기회를 만들었다.


바쁜 일상 속에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기회였지만 난 두 손으로 동아줄을 잡듯 꾹 움켜 잡았고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와 함께 둘이서 하와이 한 달을 시작해 보려 한다.



단 한 달이지만, 두근거리는 이 마음을 어쩔지 몰라 두 손을 가슴 심장부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가슴이 심장이 뛴다.


다시 콩닥콩닥.

산다는 게,

살아 있다는 게,

이런 거야?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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