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선 하와이 비행기표와 학교 접수하기
부슬부슬 비도 오는 주말 뜻밖에 전화로 무방비 상태였던 난 두 눈만 껌뻑 껌뻑이고 있었다.
"방학 동안 뭐 할 거예요? 계획 세웠어요?"
길고 긴 두 달 반이나 되는 여름 방학 동안 나의 계획은 우선 '이사'였다. 좁고 낮은 층 집에서 탈출이 올해 가장 큰 목표였고 최근 3달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방학과 동시에 이사!!! 그리고 방학 동안 학원 특강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 역시 학원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시점이었는지 나의 의견에 미소를 보였다.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학원을 엄마가 웬일로 냉큼 보내 준다는 허락에, 알고 있는 학원 정보를 줄줄 나열하며 학교 친구들이 다니는 쪽으로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실 작년 여름방학 동안 중딩 남자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었던 용감무쌍한 행위를 이번 여름방학에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집 앞이 수영장이었고 나가면 친구들이 있는 호찌민과 달리 한국에서 24시간 동안 길고 긴 여름 방학을 함께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 학원특강의 힘을 한번 빌려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큰 결심을 했는데 학원비에 화들짝 놀라 마시던 물을 다 뿜어 낼 뻔했다. (후들후들... 대한민국 사교육 이제 알아가는 중입니다.)
"응~ 이른 아침에 무슨 일이야? 난 이번에 사실 이사해~. 자기야 이곳을 드디어 내가 벗어나게 되었어~~~"
"언제 이사해? 며칠?"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다.)
"뭐~ 방학하는 시점 정도로 잡았어. 아참! 그리고 방학 특강 학원 알아보는 중이야~" (늘어지는 목소리에 비몽사몽 상태였다.)
"잉? 한국 학원비 엄청 비싸~. 알아봤어? 아직 한국을 모르는군... 몰라~~"
"아니, 이제 알아보려 했는데? 왜? 많이 비싸? 근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셩?"
"지금 시간이 없어. 내가 링크 하나 보내 줄 테니 거기 알아보고 비행기 마일리지 자기 많지? 그거 이용하고, 저기 저기 하와이랑 시간 차 우리나라랑 9시간 정도 나니 오늘이 마감이겠구나, 빨리 서둘러봐~ 같이 가자 알았지?"
.
뚜.... 뚜....
.
전화가 끊겼고 눈은 떠지지 않았다.
눈이 부셔서 핸드폰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노안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안경을 맞추어야 할 만큼 시력이 떨어졌다. 그녀가 보낸 링크는 하와이 학교 정보였다.
함께 옆에서 뒹굴뒹굴하던 남편 역시 뭔 소리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은 베개를 베고 얼굴을 맞댄 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지?
"간다고?"
"어? 아니~~ 갑자기 어떻게 가? 말도 안 돼"
"3주 뒤 이사도 해야 하는데~."
하지만 말과 달리 나의 다리는 이불 킥을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하와이가 아닌가~~~ 난 본격적으로 거실로 나와 작은 상다리를 펼친 후 겨우 하드만 돌아가는 노트북을 펼쳤다. 나의 손가락과 손목은 어느새 마우스 스크롤을 쭉 쭉 내리며 학교 웹사이트를 열어 여름방학 과목을 선택하고 있었다.
'난 단지 한번 구경만 해볼 생각이었다.'
'난 단지 어떤 커리큘럼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난 단지 이 과목들을 선택하면 돈이 얼마나 나오는지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었다.'
'난 정말 나와는, 우리 아이와는 상관없는 부잣집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 말이 맞았다.
대한민국 학원 한 과목 보다도 비용이 저렴했다.
'난 정말 이사 직후 한주만에 하와이를 갈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난 접수를 마치고 결제창 앞에서 노트북 화면만 노려보고 있었다.'
'갈까? 말까?'
'가? 말아?'
'가?'
'못 갈 이유는 또 뭐야? 목돈 좀 깨지겠지. 다녀와서 허리띠 졸라매면 되지 뭐. 가서도 절약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나의 손가락은 카드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제완료!!
허거거 거걱.
말. 도. 안. 돼.
그는 안다.
나란 여자를. 어느 순간부터 무계획에, 무작정,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산다는 것을. 어느 것에 매이거나 묶이는 것을 진절머리 나도록 싫어한다는 것을.
결정 장애였고, 완변 주의였고, 항상 부모 눈치를 보며 자랐던 난 어느 순간부터 변하고 있었다. 독립적으로 딱히 걸리는 것 없이 내가 주체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삶의 선택에 따라오는 댓가는 무거웠다. 딸로, 며느리로, 엄마로서 꼭 해야 할 의무만 했다. 나머지 것들은 매정하게 버렸다. 내가 살고 일어서기 위해 착한 딸 노릇도 버렸고, 좋은 며느리역할도 버렸다. 그리고 삶은 점차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살림도 많이 줄였다.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 이토록 바깥 활동을 하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걸렸지만 옆에서 곰처럼 함께 하던 그는 지금의 나를 더 즐거워한다. (나의 착각인가? 아님 말고~~~ ㅋㅋ )
그는 산발머리에 재비눈을 하고 선 마우스 스크롤을 쭉 쭉 내리는 와이프를 보고 그녀의 이상행동을 감지했다. 우선 아침을 얻어먹기 힘들겠다는 상황 판단하에 우유에 시리얼로 아침을 대충 때우며 서둘러 마일리지를 확인한 뒤 외쳤다.
"오~~ 마일리지 된다. 둘이 다녀와."
그의 저 말 한마디에 가슴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정말? 갈 수 있다고?"
다행히 그 친구 말대로 한국은 토요일, 하와이는 금요일. 학교 접수 마감 당일이었다.
자다 일어난 아이는 '우리 엄마 또 무슨 소리 하는 거지?'라는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녀와 전화 통화 후 하와이 한 달 살이를 결정하기까지 정확히 1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이삿짐을 싸야 해? 아니면 하와이 갈 준비를 해야 해?
제정신인건 맞지?
둘 다 해야 돼.
아....
미쳐..
by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