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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 Mar 08. 2022

가릿, 클래식 3


춥지 않아도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었다. 옷에 손을 아무리 문질러도 땀이 비져나왔다. 마디마다 땀이 맺혔다. 등은 뜨거웠다.


띵, 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시작이야. 시작이라고.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퍼런 핏줄이 살가죽 바로 밑에 있었다. 건반 위에서 손이 퍼르르 떨렸다. 미끄러질 게 뻔했다. 흡, 시작한 지 얼마지 않아 왼손 아르페지오를 통으로 틀렸다. 곧이어 종이 울렸다. 벌써? 손은 땀이 식어 얼음처럼 찼다. 객석으로 인사를 하는데 심사위원들이 종이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숫자로 눈앞이 아득했다.


매달 대회를 나갔다. 대회의 규모를 떠나 사람들 앞에서 치고 또 쳤다. 그 무렵 영은 나만큼이나 신경이 예민했다. 콩쿠르도 많았고 레슨 횟수도 몇 배가 되었다. 넌지시 나의 교육비를 언급했다. 물론 잘하라는 취지에서였겠지만 결과는 정확히 반대였다. 나는 어떤 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피를 자주 긁어 피가 났고, 딱지가 생긴 자리를 또 뜯어 상처가 났다. 상처가 난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휑한 두피를 다른 머리로 가려 묶었다. 선잠을 잤고 꿈을 여러 개 나눠 꿨다. 현실이 헷갈렸다.


어느 날은 연습을 하다가 무언가에 꽂혀 동네 문구점으로 향했다. 무언가가 필요하지도, 사고 싶은 게 있지도 않았다. 다만 문구점 주인 몰래 샤프며, 메모지며, 일제 펜을 옷소매 사이로 넣기 시작했다. 뒷문으로 슬쩍 나가려는 데 묵직한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일하던 영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문구점 어귀에 서서 영을 기다리는 동안 왜 도둑질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이유는 없었다. 무엇에 사로잡혀 여기까지 온 건지 몰랐다. 나는 내가 아닌 건가. 망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은 별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구석에 있는 나를 곁으로 오라더니 본인이 고개를 숙여 주인에게 연거푸 사과했다. 집에 오는 길도 말이 없었다. 영에게서 다섯 발자국 떨어진 채 걸었다.


“... 필요한 게 있었던 거야?”

“... 아니.”

“그럼 왜 그런 거야?”

“... 나도 잘 모르겠어.”


바로 피아노 방으로 들어가 문과 창문을 잠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속이 메스꺼웠다. 숨 막히게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머리가 지끈거려 건반 위에 엎드렸다. 얼마지 않아 눈이 따가워 어두운 피아노 밑으로 숨어들었다. 불을 켠 채 새우잠을 청했다. 눈물이 옆으로 또로록,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쾅쾅쾅!


잽싸게 몸을 일으켜 세우다 머리를 찧었다.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문을 부술 작정인 듯했다.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 목소리를 인지하자마자 숨이 막혔다.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말로 산소가 부족해서였다. 방음벽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켜주어야 했다. 빙글빙글 어지러운 채 피아노 밑을 기어 방문을 열었다. 숨을 헐떡이며 문을 열었다. 영의 얼굴이 멀겋게 떠다녔다. 시원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전신이 땀에 젖어 있었다. 영의 손엔 전화기가 쥐여 있었다. 119가 눌려있었다.


일과는 방음벽이 생긴 이후 더 단조로웠다. 영의 학원에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었다. 밥 먹고 똥 싸는 걸 빼면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오랜만에 출석 확인을 위해 들린 학교 교실은 텅 비어있었다. 하필 수학여행 당일이었다. 들고 있던 서류를 잘게 찢어 내팽개치고 싶었다. 손에는 입시 날까지 특별 재량 활동으로 학교에 나올 수 없다는 사유서가 팔랑팔랑 들려있었다. 어떡하지, 완이도 가고 싶었을 텐데. 담임 선생님은 서명란에 날인 도장을 꽝, 찍어 눌렀다. 낙장불입. 어떻게든 끝은 봐야 하는 거구나. 딱 입시 끝으로 건너뛰고 싶었다. 겨울로 날 보내주오.


입시를 어떻게 쳤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열이 하나도 안 되는 낡은 학교 안, 어디서 본 것 같은 교수들이 앉아있었다. 추위로 손은 딱딱했고 몸은 그만큼 더 굳었다. 누가 쫓아오듯 손가락을 굴렸고 세 번을 틀렸다. 그뿐이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잠시 스스로의 쓸모를 고민했다. 피아노를 치지 않는 나는 영에게 어떤 사람일까. 깊고 아득한 낭떠러지가 사방을 감쌌다. 사랑받긴 글렀구나. 기괴했다. 내가 이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니.


흘깃 영을 쳐다보고 나는 애써 목소리 톤을 높였다. “공부는 잘할 수 있으려나~.” 영은 별말이 없었다. 그대로 명단을 세 번쯤 더 톺아 보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열한 살 이후로 학교에 제대로 출석한 기억이 없었다. 시험 때면 친구들이 쪽지로 답을 써서 바닥으로 굴려줬다. 구구단도 헷갈리는 나를 안쓰러워하면서. “피아노 치는 애”의 타이틀은 꽤 많은 것을 정당화했다.  


열중하고 싶었다. 이별의 시기가 나에게는 그랬다. 애정 하거나 증오했던 대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에 몰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학교 성적 올리기 아주 적합한 종목이었다. 뭇 어른들의 사랑과 배려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고 피아노에 비한다면, 가성비가 아주 좋았다. 열두 시간 연습해도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진 지 전혀 알 수 없는 음악과는 다르게 성적은 명확했다. 쏟는 시간에 비례하여 상승했다. 더 이상 피아노 치는 애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피아노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끝이 났다. 책상 둘 공간이 필요해서 그랜드 피아노를 치워야 했다. 사다리 차를 예약하고 방음벽을 허물 었다. 전날 아침,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왔더니 희미한 멜로디가 조각조각 들렸다. 방문 앞에 조용히 귀를 대고 앉으니 부드러운 선율 사이사이 페달 밟는 소리가 들렸다. 자장가 같이 조용한 곡이었다. 왈츠를 추듯 잔잔했다. 쿵짜짜, 쿵짜짜.    

  

웅덩이에 조약돌을 던지듯 고요하더니 이내 웅장해졌다. 영이 온몸으로 건반을 때리는 게 느껴졌다. 속도도 한층 빨라졌다. 계속 빠를 것 같던 노래는 다시 서서히 느려졌다. 처음의 선율로, 속도로, 화성으로 돌아왔다. 영은 마지막 음을 누르고 오랫동안 페달을 떼지 않았다.     


Femme Au Piano     Édouard Manet (French, 1832-1883)


피아노를 그만두고 얼마지 않아 영도 피아노 학원을 접었다. 대신 학습지 노동과 책 세일즈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종목 변경에 나는 영의 눈치를 살폈다. 영은 아주 쿨하게, 학원 운영이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그만두었다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영은 점차 바빠졌고 내가 등교할 때 출근하여 저녁 느지막이 돌아왔다. 바쁜 영을 대신해서 동생을 데리러 가는 날들이 있었고 영이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다. 대부분은 저녁 상에 둘러앉아 일과를 나눴다. 나는 오늘 읽은 책의 인상적인 장면을, 영은 오늘 읽어준 책에 감명을 받은 어린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주 새로운 책이 쌓였다. 영은 소설을 얘기할 때 주로 흥분하곤 했다. <바다로 가는 은빛 그물>,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로테와 루이제>, <천사가 된 비키> 같은 책들이었다. 진작 읽어주었으면 좋았겠다며 그녀는 아쉬워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같이 영화를 보고 밤새 떠들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아빠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주곤 했다. 영과 했던 대화를 잊을까 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기를 썼다. 문득 언젠가는 우리가 했던 말들이, 나눴던 순간들이 책이 되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영에게 물었다. 영은 역시나 별거 아니라는 듯 네가 작가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했다.     


일에 지친 영은 클래식을 들었다. 바흐와 라흐마니노프, 리스트가 여전히 그녀의 최애였다. 공부에 지친 나는 성시경과 김범수의 발라드로 시작해 체리필터와 윤하의 밴드로 하루를 끝냈다. 어쩌다 둘이 같이 음악을 들어야 할 상황이 오면 변진섭 2집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아-랑이 필요한 거죠. 차가 떠내려가라 목청을 높였다. 운전자도 조수도 락을 부르듯 떼창 했다.      


가끔 음악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확히는 캠프에서 만난 그 애의 근황을 기사로 마주했다. 그 애는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내가 가고 싶은 학교들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했다. 굳이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헤어졌으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굳게 믿었다. 영은 이상하게도 종종 그 애의 동영상을 찾아봤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나에게 영상을 들이밀며 가정하기도 했다. 계속했으면 너도 잘했을 텐데, 내가 너무 자신감을 죽여놓은 거 같아.

“그랬으면 엄마랑 나 둘 중 하나는 죽었겠지. 집은 파산했겠고.”

 확신에 차 영의 말을 딱 잘라 거절했다. 이내 빠른 수긍이 돌아왔다. 이 사고의 프로세스는 꽤나 어려운 과정이었다. 오랫동안 영은 본인이 자신의 욕망을 내게 투영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8년 만에 기사에 대문짝만한 그 애의 얼굴을 발견했다. 재수학원에서 보충 학습하던 토요일 아침 이었다. 얼굴은 그대로였고 몸만 훌쩍 자란 것 같은 그 애는 내가 훔쳐봤던 앙다문 입과 감은 눈으로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1위, 천재 피아니스트> 타이틀을 달고서. 오전 내내 멀미를 하듯 머리가 지끈거려 조퇴를 결심하고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내가 음악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단 더 의미 있는 삶이었을까. 과거의 나처럼 영은 딱 잘라 거절했다.

     

집에 돌아가는 대신 밖으로 나와 소주를   샀다. 빨대로 쪽쪽 빨면서 공원을  바퀴 돌았다. 금세  병을 비웠고   없이 학원으로 향했다. 수학 문제를 풀며 처음으로 클래식을 들었다. 거침없고도 고요한, 때때로 애매하고   없는 전개가 시시각각 예상을 비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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