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놀랍도록 작은 것에 의해 채워졌다 - 엄마의 사과
네가 어릴 때 말야, 내가 너무 일에만 미쳐있었잖아. 너한테 미안하단 생각이 들더라고. 너무 일만 해서..
20대 초반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사과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정문 바로 앞 건물, 그 건물 끝에 위치한 카페에서 한 말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엄마는 평소 강사 김미경씨의 강연을 좋아했다. 엄마는 그녀의 강연 콘서트에 갔고, 그 콘서트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당시 학교에 있던 난 콘서트 후 엄마와 카페에서 잠깐 만나기로 했다.
엄마는 말했다.
"김미경씨가 그러더라. 애들 어릴 때 자기가 일에 미쳐있었대. 강연 듣다 보니까 너 생각나더라. 나도 그랬잖아. 너 어릴 때 말야. 내가 너무 일에 미쳐있었잖아. 너한테 미안하단 생각이 들더라고. 너무 일만 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그걸 이제 알았어? 내가 얼마나 힘들었다고!'소리치고 싶단 생각을 뒤늦게 했고
'사과를 바로 받아주지 말고 더 죄책감을 후벼 파줄걸' 싶은 생각도 뒤늦게 했지만
사실 미안하단 말을 들은 즉시 나의 마음은 이미 녹았다.
눈물을 참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존심 부리기였다.
나도 참 속도 없는 년이다 싶기도 한데
부모가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사랑의 눈빛을 보내면 자식은 녹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안하단 말을 듣기를 오랫동안 기다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