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병이 났다. 아랫입술 안쪽 아래 송곳니의 뾰족한 이빨 끝이 닿는 부위에 노랗게 염증이 생겼다. 염증 부위가 부어올라 겉에서 봐도 입이 비뚤어졌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염증 부위에 송곳니 끝이 닿아 아프고, 입을 벌리면 다시 다물 때 닿으니 벌리거나 다물거나 염증은 자기 존재를 지속적으로 알려준다.
보름 전쯤 오랜만에 정시퇴근을 했다. 이유는 돼지고기 대파 볶음요리를 해 먹기 위해서였다. 한단에 4천 원이나 주고 사온 대파를 시들기 전에 모두 냉동실에 넣자니 생파의 싱싱함이 아까워 며칠 냉장고 안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마침 돼지고기 대파 볶음요리 레시피를 유튜브에 업로드된 것을 보고 대파를 제대로 먹어보겠구나 싶었다. 나는 퇴근길 동네 정육점에 들러 찌게용으로 잘라놓은 기름반 살코기반인 돼지고기 300g 한팩을 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부엌으로 향했다. 갓 지은 따끈한 밥도 먹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 쌀부터 씻어 밥통에 앉혀야 하는 미션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고 있는 내 모습에 감탄도 잠깐 했다. 역시 허기진 배는 원동력이 된단 말이야.
밥은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니, 이제 돼지고기 대파 볶음을 할 차례다. 대파 두 뿌리를 다듬어 엄지손가락 길이로 큼직하게 어슷어슷 썰었다. 그리고 조선간장과 마늘,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돼지고기를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돼지고기는 익으면서 갖고 있는 기름을 녹여 자글자글 튀겨진다. 흥건해진 돼지기름은 대파를 볶을 때 사용된다. 뻣뻣한 대파는 뜨거운 기름을 만나 금세 숨을 죽이고 달달한 파 향을 내뿜는다. 돼지고기와 파가 각기 제향을 뽐내기 시작하면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들이부어 둘의 기세를 눌러준다. 센 불에서 양념장은 졸여지고 공중으로 증발되면서 조선간장 특유의 달콤한 감칠맛이 돼지고기와 대파에 엉겨 붙으면서 비로소 돼지고기 대파 볶음이 완성된다. 보기 좋게 통깨를 뿌려 팬 채로 식탁에 올렸다. 그러는 사이 밥을 잘 저으라는 밥통아가씨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반갑게 들렸다.
반찬으로 생각하고 만든 돼지고기 대파 볶음의 완성체는 안주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술을 곁들이자. 배고픔에 쉽게 맥주를 고를 수도 있었지만 식탁 위에서 두 달째 오픈런을 기다리고 있던 보리소주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하이볼이다. 컵에 얼음을 채우고 보리소주 뚜껑을 따 컵에 기울여 콸콸 두 번 쏟아부었다. 그리고 거기 사이다를 가득 붓고 레몬즙을 주-욱 짜 넣고 휘휘 저었다.
자! 이제 건배하고 식사를 시작할까? 옆지기와 나는 '건배!',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나는 한 모금 꿀꺽! '캬아!', 옆지기는 꿀꺽꿀꺽꿀꺽 '캬아!'
나와 옆지기는 젓가락을 돼지고기 대파볶음으로 가져갔다.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으니 저녁상 차린다고 동동거렸던 내 노고가 보상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처음 몇 입은 기다림에 대한 보상으로 묵묵하게, 그리고 이어지는 몇 입은 '맛있어? 맛이 어때? 괜찮지? 달큼하다, 좋다, 진짜 맛있다, 행복하다.' 묻고 답하며 소란스럽게.
시장기에 입안 가득 미어지게 밥과 돼지고기와 파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게 꽉 들어차, 혀는 이미 음식에 눌려 껴 옴짝달싹 못한다. 몇 초 동안이라도 입안에 음식을 그냥 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다가 입안에 공간이 조금씩 생기면 모든 이빨이 입안의 음식을 부수고 쪼개기를 본격적으로 하는데, 음악에 비유하자면 피아노시모로 시작해 피아노, 메노피아노, 메조포르테, 포르테, 포르티시모..., 우걱우걱우걱, 악!'
내 살을 씹었다. 위 송곳니와 아래 송곳니가 합심해서 음식을 쪼개고 썰다가 음식과 내 살을 구분하지 못하고 함께 씹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래위 두 송곳니가 맞닿기 직전에 멈추라는 뇌신경 전달 속도의 비범함이 살을 이탈시키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입에 음식을 가득 문채 거울 앞으로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천만다행으로 피는 나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었나 싶지만 그런 심정이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다시 보리소주 하이볼을 들이켰다. 입안 소독도 내심 바라며.
두 주 전 송곳니끼리 만나기 직전의 후유증은 구내염으로 자리 잡아 붉게 부어오른 환부 중앙으로 노란색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이삼일 아프면 낳겠거니 했는데, 상처를 쉬 대한 내 잘못이 크다. 환부에 연고를 열심히 발라 보지만 어떤 음식이든 입에 넣어지면 연고고 뭐고 침과 함께 싹 씻겨 상처가 홀랑 드러나면서 성을 내는데 눈물이 다 핑 돈다. 나름 묘책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씹지 않고 삼킬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한 번은 물막구수를 점심으로 먹었는데 생각한 방법대로 막국수를 식도로 직행시켜 꿀떡꿀떡 삼켰더니 배는 부른데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저녁밥때가 돌아왔다. 누가 삼시 세끼를 만들었는지 내 배꼽시계는 어김없이 알람을 울린다. 한 끼도 거르지 못하는 내 배가 참 순진하다 못해 철없다. 이렇게 저렇게 차린 밥상에 내 입병을 고려한 음식은 하나도 없다. 나는 또 방법을 강구했다. 입병이 없는 쪽 어금니까지 최대한 음식을 가져다주고 환부가 있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아 음식을 씹는 동안 입술이 닿지 않게 잡고 있어 보리라. 결론부터 말하면 씹자마자 음식이 죄다 입 밖으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는 잡고 있던 입술을 놓아주었다. 두 주에걸쳐 아리고, 쓰라린 통증을 전달해 준근면한 신경계를 이제는 알아주어야만 한다. 그동안 고통을 견뎌준 내 몸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나는 먹기를 멈췄다. 입을 헹구고 구내염약을 발랐다. 그리고 오늘은 순진한 내 배를, 아니지 내 뇌를 강하게 단련시키기로 했다. 굶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