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에 담겨진 인생의 무게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점심 한 끼에는
어떤 무게들이 담겨져 있을까
사직서를 썼다.
겨우 3일 일하고, 그만둘 결심을 했다.
도저히 입밖에 나오지 않는 말을 용기 내어서 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꾹 누르면서.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고, 다들 일주일은 앓아누울 거라고 했고,
월급이라도 한 번 받아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고
적응하면 내 일이 되어서 잘하게 될 거라고.
시험 치고 발령까지 기다린 시간이 있었으니 좀 버텨봐야 하지 않겠냐고,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정직원 제안이 있었는데도 차고 나와 선택한 길이 아니냐고..
사계절은 버텨보겠다고 연재까지 시작한 거 아니냐고,
바라던 대로 주말, 공휴일 다 쉬는 귀한 직장 아니냐고,
이제는 방학중 무급이었던 게 올해부턴 유급이 되었는데 그 혜택을 받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남의 목소리, 내 목소리 - 끝없는 아우성으로 마음이 소란스럽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몸은 몸대로 아파서, 긍정회로가 돌아가지 않았다.
솔직히 더 버티려면 버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4일째가 되었을 때, 일의 순서와 우선순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사람들도 오며 가며, 나의 생사여부(?)를 확인했다.
“~야, 살아있나?”, “힘들제, 괜찮나?”
정신없이 날이 섰던 이틀과 달리.. 이제 막내에게 살가운 인사와 격려를 해준다.
20년 전 경험은 아무 힘이 없었다. 나는 영양사가 아니라 조리실무사니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스템에선 그냥 맨땅에 헤딩 같은 기분이었고.
정신없이 일이 돌아가는 동안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하라고 해서 - 시키는 대로 일을 했는데 혼나는 일도 있어 당황스러웠다.
업무 중에 오가는 고성이나 질책이나 성난 말투들에 주눅이 들고, 자괴감도 들었으나…이해는 되었다.
일이… 본의 아니게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위생과 맛은 기본값이고, 업무효율, 안전사고 예방 등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까.
어깨와 손 아래 통증이 너무 심해졌다. 매일 전쟁같이 치러지는, 반복되는 업무강도와 긴장된 분위기를 버틸 자신이 없었다.
잘 따라가기 위해 혹은 싫은 소리를 안 듣기 위해 긴장된 상태로, 속도감 있게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은 내 몸을 갈아넣게 할 것이다.
몇 달은 버티고, 이 악물고 돈을 벌어보겠다고 여러 계절을 보낸다 해도
몸이 더 상하게 되면 정말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내 몸이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졌다.
업무가 익숙해져도 덜 힘들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은..
지금 일하는 동료들도 수년의 경력이 있지만, 버거워하며 여기저기 아파하면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과 다른 현실에 실망한 부분도 있고..앞으로 좀 편하거나 나아질 거란 기대가 없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 같다.
교육청에서는 작년보다 학생수가 좀 줄었다고 조리실무사 1명을 감원했고.. 학부모들의 민원은 과다하고..
완제품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반조리제품을 받아서 조리하는 경우도 많은데, 완전 ‘수제’보다는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 많은 양을 구워내는 일에는 같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조리도구와 바트 설거지며, 기계세척까지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버티다가 도중에 낙오되면, 다시 인력부족에 동료들이 힘겨워질 것이다…그땐 그만두는 것에 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겨우 3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잘했다고, 발전했다고 칭찬을 들었던 4일째 날, 사직서를 썼다.
일반 사업장처럼 사람을 자체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을 통해 대체직을 구하는 과정과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서
빨리 사직의사를 밝혀야 그나마, 학교에 덜 피해가 가지 않을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덜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장 한 사람 비는 것도 큰일이라, 대체직 구하기 전까지.. 최대 3월까지는 일하러 나오기로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의 짐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조리사님도, 영양사님도 난감해하면서도 서운해하셨다.
결정하고 나서도 너무 쉽게 결정한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부끄럽고, 나약해빠진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어서, 심란하고 우울한 상태가 며칠을 갔다.
사직서를 쓴 후 맞이하는 주말은 얼마나 달달했던지…더 버텨볼 걸 그랬나..섣부른 판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미련도 되살아났다.
그런 미련과 수치심을 잠재워주었던 책 속의 문장들.
주말에 읽은 책, 김신지 에세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다.
…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
산다는 건 용기다. 계속해서 내게 맞는 것을 찾고, 나를 웃게 만들 미래를 선택할 용기.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내가 내린 선택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
나의 선택을 가장 비난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다.
남편은 이미 그만두라고 재촉했기에 사직서 쓰기를 찬성했고,
평소에 나를 아는 사람은 놀라면서도, ‘너가 그럴 정도였으면…’ 정말 잘했다고 말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나의 삶이니까..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기 전에 나를 먼저 위하는 선택을 한 거니까 그만 비난을 거둬야지.
타인의 삶을 좇아가려는 것이 아니라면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이유에서 벗어나, 나만의 삶을 꿋꿋이 세워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4일 만에 사직서 낸 건 좀 창피하고 아쉬워.. 구구절절 구차하게(?) 글이 길다.
패배감이 짙게 베어든 지금도 세월이 흐르면 다시 재해석되는 날이 올거야.
그래도 마지막까지 책임감있게 일을 잘 해낼거니까.
봄이 오는 듯 산수유나무에 꽃망울이 올라와 움틔우려 준비를 한다.
다발로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니.. 휴게실에서는 하하호호 명랑한 언니들이 생각이 난다..
그새 정이 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