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아 Apr 29. 2022

1.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다

그놈의 돈 때문에

대학에는 미대가 없었다.


대학에는 미대가 없었다. 사람들은 꽤나 그림 그린다는 내게 플랜카드 디자인을 맡겼다. 선배에게 야매로 배운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리저리 만들어 주니, 남들보다는 나았다. 그것을 계기로 포스터도 만들고, 정책 자료집도 만들었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그것들을 돈 받고 만들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100p가 넘는 교지 편집도 덥석 맡고, 영상 편집도 맡아 맨 땅에 헤딩했다. 그 시절 나를 믿어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부업거리로서의 디자인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디자인 능력으로 밥을 빌어먹고 살 수 있을까? 그에 대해 나는 늘 회의적이었다. 크몽보다 낮은 단가로 디자인하며, 크몽 이하의 실력을 발휘하는 내게 어떤 밥벌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내 맘 속에 ‘디자인’이란 영역은 늘 3D 분야였다. 전공생에게 대체되기 일쑤인, 투입한 대비 시급이 나오지 않는, 내 프라이드조차 될 수 없는. 하물며 돈을 받으면서도 나는 실질적으로 디자인을 배운 친구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 내 영업 멘트는 “걔네 보다 싸게, 근데 평타 침”이었으므로.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고, 나는 당연히 비디자인 분야의 취업 준비를 했다. 공무원 시험 책도 공기업 책도 토익 책도 사서 풀었다. 마케팅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영업 자기소개서도 썼다. 스케줄러는 온 힘을 다해 잘 되는 듯 보였다. 결국 다 잘되지 못했다.


나는 돈이 없었고, 휴대폰 요금을 내고자 쿠팡 물류 아르바이트를 뛰기에 이르렀다.



동탄 쿠팡 물류센터에서 삼삼오오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



그놈의 돈 때문에


쿠팡 알바를 뛰며, 죽기보다 일하기 싫었다. 힘든 노동 후 점심시간이 되면 휴게실 바닥에 앉아 머리를 기대고 쪽잠을 잤다. 머리를 기대던 벽기둥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댔던지, 머릿기름 자국이 짙게 남아있었다.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함께 화장실에 간다며 몰래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러 갔다. 응응. 한 달만 일하고 캐디를 하러 갈 거라고요. 응응. 남친도 같이 왔다고요. 응응.


편리의 이면에는 시간을 태우는 노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동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급이 있다. 유연함. 불안함. 단순함. 권태로움. 나는 영원히  속에서 일급을 받다 죽을 것만 같았다.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일급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마침 늘 보던 페이스북에서 책 표지를 만들어 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더란다. 디자인에 회의적이었지만 쿠팡보다는 낫겠거니 싶었다. 10만 원 정도면 어떠세요? 헐값에 잡은 싸구려 중의 싸구려 디자인. 자, 그렇다면 게임이다. 적은 시간에 완성해 내 시급을 높이자. 어디까지 가능할까.


헌데 내게 디자인이란 것은 요망했다. 착수하면 내 맘에 들 때까지 하게 되더라. 결국 그 표지는 시간을 꼬박 채워 완성했다. 나는 느꼈다. 노동이, 일이, 작 '업'이 되네. 내 여태껏 가진 능력 중에 실질적 돈이 되는 것이 있었던가? 그것을 위해 밤을 새울 수 있었던가?


디자인을 넘겨받은 클라이언트에게서 몇 주 뒤 연락이 왔다.


“수아님, 이번엔 포스터가 필요한데 혹시 가능하세요?”


여전히 나는 돈이 없었고, 굴복했다. 현재는 비록 하찮더라도 ‘디자인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지성 속의 선택.  선택은 인생    되는 거대한 결심임이 분명했.



최선을 다했던 당시의 디자인



https://brunch.co.kr/@sua0691/12



Only Lovers Left Alive
* 사랑이 아니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제 좌우명이에요.

동네알바, 알바 구인구직 시장을 혁신한다
* 제가 만들어가는 서비스를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주문이에요.

글에 대한 피드백, 질문, 티타임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