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취재하기 첫번째
내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하니, 양민우는 기꺼이 첫 타자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나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이 프로젝트의 오랜 후원자였던 것처럼. 졸업 후 그를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터라 나는 더욱 설렜다. 정말, 인터뷰란 아이템을 떠올린 나 칭찬해. 양민우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니. 내 생에 가장 똑똑한 핑계가 아닌가.
양민우는 과 선배로 만나 자고로 맥주는 목구멍을 열고 들이부어야 한다는 철학을 공유했던 사람.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함께 맥주를 마시기 위해 자주 위닝 방에 갔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축구게임을 옆에서 지켜보며 시간을 자꾸 확인했었지. 그땐 빨리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누구든 빨리 이겼으면 싶었었다. 위닝이 끝난 후 들이부었던 맥주는 참 달았다. 어쩌다 집에 못 갔을 땐 양민우의 서문 하숙방 식객이 되기도 했다. 한 친구는 침대에, 나는 바닥에 누워 참 편히도 잤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생생하게 즐거웠던 경험. 양민우가 있었기에 내 대학생활은 더욱 풍족했으리라.
양민우는 어쩜 이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말 한마디마다 빵빵 터지며 웃기고 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웬걸, 공부도 잘하고 성실함. 놀랍게도 삶에 진지한 면 또한 때때로 보여서, 자연스럽게 신뢰가 갔더란다. 담백함. 담백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던 것 같다. 그땐 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천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인터뷰로 그 담백함이 그가 기울이는 나름의 분투와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minwooblue
특이하게도 그는 파란색의 오브젝트들을 아카이빙하는 계정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퇴사하고, 이 계정을 운영하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살린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기획하는 중이라고. 이번 만남에서는 그 결심과 그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만의 철학을 들었다.
그와의 대화를 정리하며, 그가 소개해주어 알게 되었던 이승열과 유앤미블루를 반복해서 듣는다. 특히 이승열의 '푸른 너를 본다'라는 곡을 반복 재생한다. 담백하게 유쾌한 그의 삶에서 이어지는 노력은 어떤 연유일까. 그 사이 일관되게 이어온 파란색에 대한 애정은 어떤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걸까. 깔깔거리기도 뭉클하기도 했던 그와의 대화를 풀어본다. 양민우의 삶과 럽에 대하여. 부닥친 현재와 꿈꾸는 미래에 대하여.
졸업하고 어떻게 살았어? 너무 업데이트가 안됐어.
ROTC(학군단) 애들이랑 많이 놀다가 졸업과 동시에 군대 갔지. 소위로 임관했어. 처음에 포병학교 가서 포쏘는 거 배우다가 김포에 가고... 군생활 1년 하고 중위 되면서 부천으로 왔어. 2016년에 전역하고. 그런 뒤 취직 준비를 했고. 그때는 아마 소식을 못들었을거야.
직장은 어떻게 구했는데?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을 탐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걸 재밌어한다고 느꼈거든.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거지. 그 일환에서 그냥 고시나 대기업에 가기보다, 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콘텐츠 진흥원 이런 곳들이 눈에 보이더라고. 그래서 경험 쌓을 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는 문화관광연구원이라는 데서 위촉 연구조원으로 몇몇 연구를 진행했었어.
거기 박사님들이 공교롭게도 ROTC 출신들이 많은 거야. 크크. 그땐 한참 군인 정신이 남아있을 때라 되게 잘 도와드리면서 단기간에 한 다섯 개 과제를 참여하게 됐었어. 한국적인 상품을 소개하는 거라던가. 산업의 문화화. 이야기 산업이란 것도 있더라고? 그런 산업을 구체화하는 일이라던가. 인생 나눔 교실이라고 소외계층을 지원해주는 사업 같은 것. 어, 이번에 퇴사하면서 정리한 게 있는데... 여기 다 적혀있어.
아니, 이 엑셀 시트는 뭐야? 이런 걸 정리해 논다고?
나를 돌아보는 엑셀 시트야.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 전환점에서 시간이 넉넉히 주어졌잖아. 내가 가진 예산과 지출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일을 꾸밀지 궁리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나더라고. 내가 성장하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해야 될지 가늠하기 위해 한 번 돌아봤지. 후회 없이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태어났고 몇 시에 나왔는지 엄마한테 다 물어봐서 적어봤어. ㅎㅎ. 우리 가족은 어떻고 내가 다닌 학교는 어땠고.
이건 뭐야 어린이 반장? 이거 진짜 소름 돋는다.
ㅋㅋㅋ 나 운천초등학교 나왔고, 전교 어린이 회장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반장이었고. 나 6학년 내내 반장이었어. 그때 하다가 질려가지고 이제 커서 안 한 거지. 지금은 약간 쫌생이지만.
아니 완전 인싸뽀이였네.
비고에 적혀있는 거 보면 나 짱 출신이야. 굳이 따지자면 내부 짱이었어. 다른 학교랑 싸움하러 다니는 짱이 따로 있고, 사실은 걔도 학교 돌아오면 내 밑에야.
그걸 누가 정하는 건데!
엄연하게 정해져 있었어.
이거 인터뷰에 넣어도 되는 말이지? 전 국민이 알게 될 거야 이제.
운천초 짱이었고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요. (아 너무 ㅋㅋㅋㅋㅋ)
뭐냐면 내부에서 이제 그 치안을 담당하는 그런 짱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딴 학교랑 막 싸우러 다니고 이런 전투원 짱은 따로 있고. 말했지. 걔도 돌아오면 어쨌든 서열로 따지면 내부 짱은 나니까 사실.
약간 용병 갖춘 짱이었네. 학생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담당하는.
그렇지. 아무튼 나쁜 짱은 아니었고.
어쨌든. 맘 놓을 직장을 구한 뒤엔 어땠어?
한국 언론진흥재단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정부 광고 대행 및 지원하는 일을 했어. 그렇게 2년 동안 미디어 플래너라고 매체 계획 짜는 걸 했지. 공공 정책, 기관, 지자체 홍보의 효율을 위해 컨설팅하는 일이었어. 그 뒤로 1년은 바이어로 방송이나 협찬 지면을 직접 구입하는 일을 했고. 나머지 2년 정도는 인사 쪽으로 와서 채용, 직원평가, 노무, 행사 업무하다가 지금은 퇴사했지. 총 5년 다녔네.
나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물론 모든 노동이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 하지만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컸어. 이 일이 내가 즐겁지 않고 보람차지 않은데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 그런 와중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그런 느낌이 확 올 때가 있었어.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세월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고,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어쨌든 나중에 후회될 수밖에 없는 시간을 쌓아오고 있는 거잖아. 나는 그렇게 살지 않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 아무리 윤회와 부활이 있다고 해도 나로서 사는 게 한 번이라는 생각이었어. 그렇다면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일이 힘들거나 보람이 느껴지지 않을 때, 회사에서 진짜 스트레스받을 때. 난 다이어리에 썼어.
뭐라고 썼는데?
인생 한 번인데 시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와중에 쓰고 싶은 단어였어.
나한테도 써줘.
솔직하네.
그래도 난 이게 답이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아. 누군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비전을 갖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모든 노동은 가치가 있으니까. 이 말을 꼭 앞에 인터뷰 앞에 써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나는 불만 속에서 결정을 했다는 거야. 기회비용이 있음에도 나는 여타 다른 가치보다 이 일을 그만두고 내가 계속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선택을 했다는 거니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에서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걸 '했고', 누군가는 '안 했고'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해. 궁상맞고 촌스럽더라도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걸 했어. 그럼 그 사람은 한 사람이야. 근데 아무리 멋있게 자신의 생각을 갖더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얘기해도 그 사람은 안 한 사람일 거야. 그 둘을 비교하면 내가 봤을 땐 적어도 '한 사람'이 더 멋있는 것 같더라고.
적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시작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용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글쎄, 내가 퇴사한 걸 보고 많이들 용기 냈다고 해. 용기 낸 거 맞을 수 있어. 근데 사실 용기 냈다기보다 나에겐 퇴사가 더 현실적인 결정이었어. 불행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는 일에서 벗어나서, 나에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펼쳐보는 게 더 현실적인 일이야. 훨씬 경제적인 일이고. 가능성이 보이는 일인 거잖아. 그런 일에 걸어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일인 것 같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극도의 생산성을 찾아가는 일.
그럼 이제 하려고 하는 일은 공간을 여는 일이라고 봐도 될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다고 느끼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 나눌 수 있는 매개를 만들고 싶은 게 목표야. 연 내에 작게라도 내 공간을 오픈하려고 준비 중이기도 해. (그 공간은 높은 확률로 파란색에 대해 나누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걸 위해선 나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 거야,라고 생각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짚어가는 게 지금의 우선순위인 것 같아. 나다우면서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주고 싶은데. 그걸 하려는 나를 잘 알면 어떤 형태든 사람들에게 공간이든, 콘텐츠든, 어떤 형식으로든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 쇼룸처럼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취향을 경험하고 소비해보면서 삶에 대해 더 적극적인 단서들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어.
끈질기게 아카이빙 해 온 파란색에 대해서는?
파란색은 정말 특별한 색이야. 자연적으로 내기엔 어려운 색이고.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이 색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앞으로의 키포인트이기 때문에 많이 밝히긴 어려워. 내 취향을 말하는 하나의 모티프로 봐주면 좋을 것 같아. 앞으로 이걸 매개로 어떻게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갈지 기대해주시라. (말미에 스포有 )
양민우에게 삶과 럽이란.
삶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의하는 것부터 얘기할게 많은 것 같아. 화장을 하게 되면 사람이 그냥 뼛가루로서만 남게 되잖아. 그렇다면 사람의 삶은 어디까지일까? 각자 생각하는 탄생과 죽음의 시점이 다를 것 같아. 그 둘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구간을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어. 그것뿐만이 삶이라곤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사이를 '살아가는' 거지.
나는 사랑이 그 '살아가는' 과정을 주체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 사랑이 있기에, 나는 선택해가는 이 과정을 더욱 열심히 선택할 수 있고 노력할 수 있지. 사랑은 노력이잖아.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과정이 삶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생을 준다고 믿어.
마지막으로.
지금의 노력 이전에는 이대로라면 성불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너무 아쉽잖아. 아직도 나는 성불할 수 없어. 나만의 뭔가를 만들지는 못했잖아. 아니, 반 정도는 성불할 수 있을까? 그러네. 이제 조금은 성불할지도. 나 화장실 갔다 온다.
잠깐만, 이제 다 끝났어. 성불합시다라고 한 번 말합시다.
성불합시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듯, 그가 퇴사 후 어떤 것을 실질적으로 만들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콘셉트를 도둑맞을까 겁난다나 뭐라나... 허나 그가 알 수 없는 삶의 미래를 가늠하는 방식에서 나는 확고한 의지를 본다. 또한 그 조심스러움에서 그 특유의 현실감각을 느꼈다. 또한 그 방향성까지.
실존하지 않는 색을 여기저기서 보고 드러내 왔던 뚝심이라면, 어떤 그 무엇이 불가능할까.
이 인터뷰를 끝까지 읽는 행운이 있어,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궁금해졌다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승열의 '푸른 너를 본다'를 함께 플레이할 준비 하시고, 앞으로 그의 행보를 따라가 봅시다. 성지가 될 것이여. 미숙한 첫 인터뷰를 기꺼이 나눠주고 얼굴 비춰준 양민우에게 당분간의 찬사를 바칩니다.
오랜만에 고갤 들어, 푸른 너를 본다. 끝도 없이 푸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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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어 김수아 : 92년 태어나 우울한 유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 사랑을 글로 배워 주기적으로 아팠다. 현재는 적성을 찾아 디자인을 하는 중. IT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지만 디자인이면 뭐든, 특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만 하도록 디자인하는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