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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Mar 16. 2023

9회차를 기다리며

학부모 상담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경우는 내가 중요한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했거나 예정에 없이 비가 쏟아질 때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학교에 오시긴 했지만 정문까지만이었다.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사주시긴 했어도 그 외 엄마와 선생님의 연결고리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더욱이 학부모 상담을 위해 학교에 오신 적은, 내 기억에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다.


굳이 ‘아무리 생각해’보려고 애쓴 이유는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의 엄마는 매년 학교에 가셔서 담임선생님과 상담하셨다는 거다.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두 오빠’ 덕분에 이미 호의로 가득했던 선생님과의 상담은 무한 신뢰 및 칭찬 일색이었다고 한다. 친구가 그녀의 엄마에게 전해 들은 상담 일화를 들려주는 동안에도 머릿속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우리 때도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고?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랑 상담한 적 없는데??’      


선생님과 자연히 소통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유전자는 따로 있는 걸까? 친구는 딸의 선생님과 통화하거나 대면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학부모 상담 때마다 부담스럽다는 내 말에 “정말??” 하면서 놀라워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어김없이, 학부모 상담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가정통신문이 왔다. 대면 상담과 전화 상담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방문 상담에 체크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마음을 좇아 전화 상담에 체크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대면하는 게 영 편치 않은 유전자 역시 따로 있을까? 그 옛날 우리 엄마도 내가 건네준 가정통신문에 ‘불참’이라고 소신껏 적어 회신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올해 5학년이 되었으니, 1년에 2회로 계산하면 이번이 아홉 번째 상담이다. 그동안 무슨 안 좋은 기억, 경험이라도 있어서 상담 알레르기가 생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반대의 기억부터 재생된다.


코로나와 무관한 시절이었던 1학년 때 상담은 학교 교실에서 이뤄졌다. “기본적으로 저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입학식 때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 그 한마디가 가슴에 남아있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좋아하면 저절로 되지 않나. 첫인상 그대로,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까이 마주앉은 담임선생님은 한없이 인자하고 다정하셨다. 주고받는 말들은 어색하지 않고 차분했다. 온기로 가득한 교실을 둘러보며 안심했다. 그때의 학부모 상담은 ‘따뜻한 떨림’으로 각인되어 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2학년 때는 선생님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학습꾸러미를 나눠주는 학습 조교 같았다. 학부모 상담이라기보다 코시국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통화였다. 코로나로 모든 게 들쑥날쑥하던 시절이라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적절한 가이드를 기대했지만, 선생님도 학부모와 비슷하게 우왕좌왕하시는 듯했다. 상담은커녕, 메뉴얼에 따라 사실 여부만 확인하는 주민센터직원과의 통화 같았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20분 주어진 상담 시간 중 겨우 5분을 채우고 먼저 끊으셨다. 상담에 대한 부담만큼이나 생각과 마음을 잘 정돈하고 그 시간을 맞이했는데 고작 5분 동안의 겉핥기식 스몰토크라니? 선생님과 유일하게 소통할 기회이자 권리를 박탈당한 기분이었다. 5분 동안 가장 확실히 얻은 정보는, 교사로서 임하는 그분의 그릇 사이즈였다.


4학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아이가 꼽은 ‘최고 조합’이다. 1학년에 이어 4학년에 와서야 비로소 ‘선생님 복’이 다시 터졌다. 아이 일기장에 남겨주시는 코멘트만 봐도 마음씀이 엿보였다. 같은 나이의 외동딸 이야기로 공감해주시고, 작은 성취마다 격려해주시며, 게임이나 포켓몬빵 타령에도 추임새를 넣어주셨다. 자연히 내적 친밀함이 쌓이고 고마움이 커졌다. 학부모 상담 때 하마터면 선생님인 줄도 잊고 수다를 이어갈 뻔했다. 마음 같아선 정말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은..그런 분이셨다. 내 학창 시절 속엔 ‘존경하는 스승님’이 단 한 분도 없는데, 아이 덕분에 ‘존경하고 고마운 선생님’이 한 분 두 분 늘어간다.  

   



매 학기 거쳐야 하는 학부모 상담이 부담스럽다고 구구절절 쓰다 보니, ‘그래서 안하고 싶다’가 아니라, ‘이번에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학부모만큼이나 선생님도 긴장하신다는 걸 안 이후로는 피차일반이라는 배짱도 좀 생겼다. 이번 학부모 상담은 어떤 경험을 안겨줄까. 등교한 첫날, 아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첫인상을 얘기해줬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좋은 것 같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아무래도 2023년 선생님 복도 팡! 터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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