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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as Feb 28. 2022

멕시코에서는 버스를 탄다

멀미하는 내가 버스 타는 걸 좋아하게 될 줄이야

멕시코엔 버스가 많다. 멕시코는 정말 큰 나라고, 내가 머물렀던 서쪽 바닷 마을의 주요 이동수단은 바로 버스다. 한국처럼 보기 편한 버스 시간표나 버스 정류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버스 정류장 표지판이 없는 곳이 대다수고 마을에 오는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니면 지나가는 버스를 잡거나.


오늘은 날 잡고 시내에 가기로 했다. 내가 지내는 곳은 해변인데 해변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 슈퍼마켓도 편의점도 없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만 몇 군데가 있다. 카드를 받는 식당도 겨우 한 군데가 있지만 현금인출기가 없다. 해변에서 택시를 타고 10분쯤 가면 가까운 타운이 나온다. 그곳에 동네 슈퍼가 있다. 가려고 한 시내는 해변에 오기 전 며칠 머물렀던 지후아타네호 Zihuatanejo, 쇼생크탈출의 마지막 장면의 바로 그 장소다. 택시를 타고 Los Llanos라는 가까운 타운에 간다. 그 타운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조금 기다기면 버스가 오고 그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면 지후아타네호가 나온다.


이 동네에 또 올 줄은 몰랐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기 전 시내에서 할 일 리스트를 적어 놨다.

- 돈 뽑기

- 폼클렌징 사기

- 후라이드 치킨 사 먹기

- 장 봐오기


현금 인출도 했고, 구운 치킨이 아닌 후라이드 치킨도 사 먹었다. 한국에서 처럼 바삭하고 촉촉한 맛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그러고 나서 지후아타네호의 큰 슈퍼마켓에서 7만 원어치의 장을 봐 왔다. 양손 가득 들고 왔는데 막상 집에 와서 풀어보니 다음 주에 또 시내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손이 작다.








잔뜩 장을 봐서 양손에 가득 짐을 들고 육교를 건너고 있는데 저 밑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다. 버스 기사님이다. 운전석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기사님이 어디 가냐고 물어본다. 나는 로스 야노스에 가냐고 큰 소리로 외쳤더니 안 간다고 하셨다. 그래도 고맙다고 외치고 육교를 마저 내려갔다.


몇 개의 버스를 보내고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겨우 발견했다. 버스가 보여 손을 흔들면 버스가 선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목적지를 얘기한다. 그렇게 버스를 타면 된다. 난 걷는 걸 선호하지만 더위 먹을 것 같은 푹 찌는 날씨에는 버스를 타는 게 낫다. 거리에 따라 버스 요금이 다른데 가까운 거리는 10페소 정도, 한화로 600원 정도니 버스비가 정말 저렴하다. 나는 꽤 먼 거리를 가야 해서 36페소를 냈다.



게레로 지역을 다니는 작은 버스들


버스에 앉아서 지갑을 꺼내 주섬주섬 돈을 꺼내고 있는데 먼저 얼마라고 말해주는 승객들. 열심히 토론하더니 정정해준다. 올 때 이미 버스를 탔기 때문에 이미 버스비가 얼마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너무 고마웠다. 따뜻한 분위기 속 좌석에 앉아 살짝 졸았다. 10분쯤 지나 버스 정류장에 정차했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버스 기사님이 종이에 도장 같은 걸 찍는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정류장 멀리서부터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귀여운 아가와 엄마가 버스에 올라탔다. 들어오면서 '그라시아스, 부에나스 따르데스-' 하니 앉아있던 승객들이 입을 모아 '부에나스 따르데스-'를 외쳤다. 아, 왜 이렇게 좋지. 이 정겨움.


Buenas tardes-!


분명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곳곳에서 대화의 꽃이 폈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멀미도 잊은 채 감상에 젖어들었고, 어느새 내가 머무는 해변과 가까운 타운, 로스 야노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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